이미지 크게보기

신보영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칭, 타칭 ‘협상의 달인’이다. 지난 1월 취임 뒤 연일 거침없는 언변과 예측 불가능한 행보로 전세계를 흔들어놓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술에는 명확한 패턴이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1987년 발간한 자서전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도 서술돼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꼽은 협상기술을 요약하면 “큰 그림을 그린 뒤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한 다음 레버리지(지렛대)를 활용해 옵션을 극대화하라”이다.

일각에서는 미치광이 전술이나 벼랑 끝 전술이라고 비판하지만, 불확실성을 끌어올려 상대 심리를 흔들어놓은 뒤 이득을 취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심리적 입지 구축을 중시하는 손자병법에도 닿아 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 패턴은 외교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정상회담 이전에는 연일 ‘블러핑(허세·엄포)’을 늘어놓았다가 실제 회담에서는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이후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식이다.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 4월 미·중 정상회담이 같은 패턴을 밟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이전에는 “중·일은 환율조작국”이라고 비판했다가 정상회담 뒤에는 “더 이상 아니다”고 말을 바꿨다.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 70억 달러(약 8조 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했고, 중국으로부터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해제·중국 금융시장 진출 장벽 완화 약속을 받아냈다.

다음 차례는 한국이라는 설이 워싱턴에 파다하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4월 말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비용(10억 달러)을 지불해야 한다”면서 사전 포석을 깔아둔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자주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언급하는 것은 북한 문제의 심각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향후 제기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한·미 관계의 진짜 시험대는 어쩌면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제재·압박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북핵 문제가 아니라 무역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준비는 매우 부실하다. 당장 최근 윌버 로스 상무장관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3월 중순이었던 한·미 FTA 5주년을 5월로 잘못 언급했는데도, 누구도 오류를 수정하지 못했다. 한·미 간 대북정책 채널은 탄탄하지만, 무역 부문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인맥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있는 통상조직 운명도 아직 결정되지 않은 데다, 새 정부에서 고위직을 꿈꾸는 일부 주미 대사관 외교관·주재관들은 한국 복귀를 기다리면서 마음이 붕 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외교·안보 라인만큼이나 무역 관련 인적·조직 개편을 빨리 단행해야 하는 이유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유명한 구호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처럼, 한·미 관계에서도 “바보야, 문제는 무역이야”라는 표현이 들어맞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boyoung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