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 한·일(韓日) 관계는 심각한 비정상 상태에 빠져 있었다. 과거사 문제가 안보·경제 분야 협력의 필요성을 압도했다. 부산 소녀상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난 1월 주한 일본대사가 귀국했다가 한국 대선을 앞두고 4월에야 귀임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협상이나 타협이 이뤄진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일 처음으로 통화를 갖고 조속한 정상회담 개최 및 미래 지향적 접근에 의견을 모은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두 정상 사이에 어떤 의견 접근이 이뤄진 것은 아니어서 언제든 불협화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12·28 위안부 합의’가 당면한 뇌관이다. 문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별항으로 두고, 협상 무효화와 재협상 추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솔직한 입장을 밝히고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착실히 이행하길 기대한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맞받았다. 서로 입장을 전했을 뿐이다. 그래도 문 대통령이 자신이나 정부 입장이 아닌 ‘국민 정서’라는 표현으로 우회함으로써 파국은 피하는 현명함을 보여주었다.

한·일 관계를 쾌도난마식으로 단기간에 푸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조속한 관계 정상화는 대북 공조, 한·미 동맹, 한·일 경협을 위해 절실하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정상회담도 거부하며 위안부 문제에 ‘올인’했지만, 결국 어정쩡한 합의에 그치고 말았다.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사무친 감정을 생각하면 상종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민족감정일 수 있지만, 감정에만 휘둘리면 잃는 게 더 많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따질 건 따지더라도 한·일 셔틀 외교나 한·중·일 정상회담 정례화 등 국익과 미래를 중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