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장관 임명에 시간 걸려
朴정부 장관들이 심의·의결

인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당분간 차관 중심의 비상체제로 국정운영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국무총리와 장관 임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을 대비,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 없이 대통령이 바로 임명할 수 있는 차관들로 시급한 현안들을 처리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대거 유임된 박근혜 정부 장관들의 역할은 차관회의에서 논의된 안건들을 심의·의결하는 법적 역할에 국한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금명간 각 부처 차관으로 구성된 차관회의를 소집해 시급한 현안을 밀도 있게 논의할 예정이다. 차관회의는 국무회의 상정안건을 실질적으로 조정하며, 국무조정실장이 그 의장이 된다.

그러나 차관회의는 안건 조정과 논의만 가능할 뿐, 국무회의가 하는 심의·의결 등 법적 행위는 할 수 없다. 헌법 89조는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 행정 각 부의 중요한 정책의 수립과 조정 등은 국무회의 심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차관이 장관을 대리해 국무회의에 출석할 수는 있지만, 국무회의 규정 7조에 따라 대리 출석한 차관은 표결에 참가할 수 없다. 따라서 당분간 홍 실장을 중심으로 한 차관회의가 각 부처 실권을 쥐되, 이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해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역할은 박근혜 정부 장관들이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당분간 차관 중심의 비상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자칫 장관 인선을 서둘렀다가 여소야대 국회에서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인사청문회에서 낙마, 국정운영의 걸림돌이 되는 상황을 방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 박근혜 정부 초기 김용준·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하면서 국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장관 임명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갖고 장관 후보자를 검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 조기 안정화가 시급하다는 판단하에 조직개편도 최소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방송기자클럽 후보초청토론회에서 “정권에 따라 부처를 없애고 새 부처를 만드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급적 연속성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의 경우 국회에 온 지 52일 만에, 이명박 정부에서는 32일 만에, 노무현 정부에서는 41일 만에 처리됐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