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민병권(가운데) 이사장을 비롯한 여백주택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9일 밤 경기 고양시 흥국사 입구에 위치한 공동체 주택 ‘여백’의 커뮤니티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밝은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여백주택협동조합’을 통해 본 공동 주거설계

‘은퇴 설계는 집에서 시작해 집에서 끝난다’고 할 정도로 은퇴 설계에서 주거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집을 장만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를 중심으로 인생을 재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대부분의 사람이 은퇴 이후 주거에 대해 뚜렷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공동체 주택을 함께 짓고, 사회적 가족을 이루며 돈으로 살 수 없는 공동체의 가치를 체험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은퇴 전후 시니어라고 해서 시니어들끼리만 모여 사는 것보다 여러 세대와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 주택이 다양성 측면에서 권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불어 사는 30∼60대의 모습은 공동체 주거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한 지난 9일 오후 7시 50분 무렵. 북한산을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경기 고양시 흥국사 입구에 다다른 순간, 마을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여백주택협동조합’을 대표하는 민병권(64) 이사장의 살가운 목소리였다.

현재 이곳에는 30대 1집, 40대 2집, 50~60대 7집 등 총 10가구 24명이 살고 있다. 4층짜리 주택 2개 동에 5가구씩 거주하는 이들은 지난 2015년 4월 주택건설협동조합 하우징쿱에서 모집한 서울 은평지역 협동조합주택 설립 희망자 모임에 참여하면서 알게 됐다. 이후 매주 입주자 모임에 나오면서 의기투합했고, 2016년 8월 현재의 주택을 완공해 ‘더불어 함께’ 살고 있다. 이날 오후 8시부터 ‘커뮤니티실’에 하나둘씩 모인 이들은 그동안 경험한 공동체 주택의 삶을 여과 없이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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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구가 한 가족처럼 지내요. 함께 산 지 8개월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벌써 친형, 친언니, 친동생처럼 한 가족이 된 것 같아요. 모두가 모여 소통하고 공유하는 커뮤니티실이 있는 것도 우리의 자랑거리죠.” 민 이사장은 공동체 주택의 장점은 무엇보다 ‘끈끈한 유대감, 친밀한 관계 형성’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공동체 주택은 독립된 커뮤니티 공간을 설치한 주거공간으로, 공동체 규약을 마련해 입주자들이 소통·교류하고 공동체 활동을 하는 소규모 주거 형태로 최근 주목받고 있다.

여백주택협동조합도 자치규약을 만들어 10가구를 기획운영·생태환경·교육문화 등 3개 분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기획운영분과는 관리와 회계를 담당하고 생태환경분과는 청소, 쓰레기, 주변 조경 등을 맡는다. 교육문화분과는 협동조합과 관련된 교육도 하고,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동네의 특성에 맞춰 어르신들과의 관계 유지에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손근호(44) 씨는 “이곳에 계속 살고 계시던 원주민분들과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 입주할 때 동네 어르신들을 초청해 이사 신고 겸 잔치를 했다”며 “그전까지 없던 일이어서 마을에서 매우 반기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손 씨는 “이곳에 오래 사신 분들로부터 여기 와서 공기 좋은 혜택 등을 누리려고만 하지 말고 마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마을에서 살려면 동네 지역 분들하고 친숙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다함께 모인 여백주택협동조합 조합원들.

정선애(여·47) 씨는 “피를 나눈 사람은 없지만 같이 사는 분들이 내가 어려울 때 내 편이 돼 줘 가족처럼 기댈 수 있다”며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이분들이 내 손을 잡아 주리라는 믿음이 있어 200% 만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불편한 점도 있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아파트처럼 상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음료나 반찬거리 등이 갑자기 필요할 때 먼 곳까지 가야 한다.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아요. 인터넷을 하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여기 있는 누군가가 다 해결해 줘요. 어디 이뿐인가요. 우리 나이쯤 되면 아무도 말을 잘 걸지 않아요. (웃음) 이런 건 알아서 처신해야 되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어서 너무 좋아요. 이웃 아기 아빠가 우리 아들 같고, 어린아이들은 우리 공동의 손주나 다름없어요.” 이종선(여·64) 씨는 “옥상에 채소를 심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다. 특히 동네를 걸어 다니며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데가 많아서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뒤늦게 이야기 대열에 합류한 성민성(39) 씨는 “이곳에 와서 가장 달라진 점은 주말에 바빠졌다는 것이다. 주말에 할 일이 자꾸 생긴다. 그게 단점이자 장점”이라며 “개인적 삶을 살기보다는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입주하기까지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우리도 마을의 환경미화에 참여하고 주변 환경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아파트에 살 때는 주말을 나만의 방식으로 보냈는데 여기서는 자기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도움을 주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고양 =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