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동무생각’은 작곡가 박태준의 짝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홍난파는 악기 구입비를 얻기 위해 당대의 부호인 윤치호를 협박했다.” “작곡가 조두남은 ‘선구자’의 작사가 윤해영과의 만남을 한사코 숨겼다.”
이런 이야기들은 최근 나온 책 ‘가곡의 탄생’(반딧불이 발행·사진)에 담겨 있다. 저자는 이정식 서울문화사 사장. 언론인인 저자가 성악가로도 활동하며 애창가곡집 음반을 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2011년 가곡 에세이 ‘사랑의 시, 이별의 노래’를 펴낸 바 있다. 이번 책은 그 속편 격으로, 일제강점기 공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명곡 탄생의 비화들을 다채롭게 소개하고 있다.
본디 가곡은 우리나라 전통악기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를 칭했다. 그러다가 서양 음악이 들어오면서 그 성악곡을 함께 이르게 됐는데, 대체로 노랫말이 아름다운 시(詩)로 이뤄져 있다.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이 한 보기다. 저자에 따르면, 박태준은 교사 시절에 같은 학교에 재직했던 시조 시인 이은상에게 소년 시절의 짝사랑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은상은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박태준이 이미 만들어 놓은 곡에 어울리는 시 ‘동무생각’을 썼다는 것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비화 중의 하나는, ‘봉선화’의 작곡가 홍난파가 젊은 시절 일본 유학 중에 부호 윤치호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 홍난파는 이 편지에서 자신의 유학 자금을 대준 윤치호에게 고가의 바이올린을 살 돈도 보내 달라고 요구하며 조선 부자들의 빈곤층 수탈을 언급한다. 부자들이 자기 재산을 누릴 수 없는 때가 올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윤치호는 자신의 영어 일기에서 “홍난파의 협박성 편지를 읽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고 토로했다.
주지하다시피, 홍난파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단체인 수양동우회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감옥 생활을 했다. 그러나 뒤에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친일 노래를 작곡한 것이 드러남으로써 친일파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홍난파가 작곡한 ‘고향의 봄’의 원작 시를 썼던 이원수 시인도 일제강점기 말엽 친일 작품을 남김으로써 시대의 멍에를 쓰게 됐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 7월 열린 제3회 ‘해설이 있는 가곡음악회’의 한 장면. 반딧불이 제공
홍난파와 쌍벽을 이루는 현제명은 ‘희망의 나라’에서 보듯 박진감 있는 선율을 지향했다. 쾌활하고 품이 넓은 그는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해방 후엔 교육계에서 수많은 후학을 배출함으로써 한국 음악계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이다. 그런 그도 일제강점기 말기엔 잠시나마 친일의 길을 걸었던 흔적이 있다.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도 사후에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그에게 선구자의 원작 시를 전해준 윤해영도 ‘저항 시인’과 ‘친일 시인’이라는 양극의 평가가 엇갈린다. 조두남은 생전에 윤해영과의 관계를 숨기려고 애썼다. 윤해영이 해방 공간에서 월북한 탓이란 게 저자의 추정이다.
이처럼 가곡 탄생의 이야기들은 민족 수난사를 안타깝게 반영하고 있다. 저자는 “목숨 바쳐 독립 투쟁을 한 선열을 생각하면 친일을 옹호할 수 없으나, 오랜 세월 우리 가슴을 뜨겁게 달궈 온 가곡 선구자 등은 우리의 귀중한 자산으로 존중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이 책은 애상조의 과거 가곡과는 달리 분위기가 경쾌하고 리듬도 다양해진 최신곡들에 대한 소개도 담고 있다. 가요 작곡가인 한돌이 가곡 ‘독도의 사랑’을 지은 이야기는 목울대를 뜨겁게 하는 감동을 준다.
책 부록에는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해설이 있는 가곡음악회’ 진행 상황, 성악가 김동규와 주먹계 대부인 김태촌을 두 사람의 콧수염을 매개로 만나게 한 일화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가곡 이야기의 진실을 찾기 위해 국내외 곳곳을 누볐다. 성악가로서의 우리 음악에 대한 열정과 언론인으로서의 현장 중시 탐구가 함께 어우러진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kind=link}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