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8세기 한 사제가 벌이는 구마식을 그린 풍자화. 환자의 입에서 귀신이 날아오르고 있다. 뿌리와 이파리 제공

광기와 문명 / 앤드루 스컬 지음, 김미선 옮김 / 뿌리와 이파리

광기(狂氣)라는 단어는 ‘미쳤다’는 말을 뛰어넘는, 뭔가 섬뜩한 기운이 담겨 있다. 무슨 일이든 광기가 결합되면 제어할 수 없는 과격함을, 하여 파괴적인 결과로 귀결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네로 황제의 광기는 로마를 불바다로 만들었고, 히틀러의 광기가 만들어낸 홀로코스트는 더는 시를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많은 사람들은 광기를 ‘문명의 정반대’, 문명 밖의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광기와 문명’의 저자인 앤드루 스컬은 광기가 ‘문명 속’에 있음을 단언한다. 원제도 ‘Madness In Civilization’이다.

온화한 용어인 ‘정신질환(mental illness)’이나 ‘정신장애(mental disturbance)’를 두고 굳이 광기(madness)라는 가혹한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저자는 “사회구조와 안정된 사회질서라는 관념 자체에 실제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중요한 도전을 제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명 속’에서 발생해 문명 그 자체에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성서’는 물론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등 문학작품을 먼저 소환한다. 이어 정신장애의 뿌리를 몸 안에 두려 했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의학과 “신체의 흐름을 방해하는 점액”을 광기의 원인으로 본 중국 최고(最古) 의학서 내경(內經)으로 이어진다. 물론 귀신의 영향이라고 믿었던 여러 문명권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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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중세가 문명사적으로도 ‘암흑과 여명’을 동시에 품고 있듯 광기에 관한 생각에서도 ‘암흑과 여명’기임을 분명히 한다. 이를 테면 기독교의 세가 강했던 유럽도, 이슬람이 지배했던 중동도 종교적 영향에 따른 신비주의적 경향이 강했다. 그럼에도 광기를 ‘심리적 스트레스나 파탄의 산물이거나 신체적 외상의 산물, 혹은 다른 연유로 몸이 평형 상태에서 팽개쳐진 결과물임을 인정할 용의”가 있었다. 역사의 암흑기라 일컫는 중세 때도 광기는 ‘문명 속’에서 다뤄졌던 것이다.

15세기 말부터 시작된 근대의 기운은 광기를 생각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근대인들은 광기가 몸이 아닌 “정신 혹은 영혼의 문제”로 봤다. 특히 16∼17세기 유럽에서는 우울질이 뚜렷한 지적 유행으로 나타날 정도였다. 당대 의사들은 “우울한 병은 모두 고질적인 병”으로 “의사들의 골칫거리이자 고뇌 자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방만큼은 현대식이었다. “식사와 운동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신선한 공기와 건강한 환경”을 만들고 “따뜻한 목욕, 마음을 진정시키는 음악, 숙명”을 당시 의사들은 강조했다. 오늘 우리가 병원에서 가장 많이 듣는 게 바로 이 말 아니던가.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대감금’이라는 제목으로 18세기부터 신경과민, 우울증 혹은 광기에 물든 사람들, 즉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보이는 이들을 격리하기 시작한 내력을 밝힌 것이다. 감호소가 생겨난 것은 당연히 “정신질환자 처우의 과학적·인도적 진보로서 널리 환영”받을 일이다. 전 시대에는 “잔혹 행위”로 광인들을 압제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예삿일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반에 이르러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 주로 종교단체들이 대규모 감호소를 설립했다. 도러시어 딕스라는 미국의 도덕 사업가는 1843년부터 미국 전 주에 감호소 설립을 주장했다. 그러나 감호소에 대한 “유토피아적 기대”와는 달리 불법감금과 열악한 처우 등 각종 폐단이 속출했다. 19세기 당시 대중은 감호소를 “사회적 쓰레기더미를 간편하게 보관해주는” 곳이자 “쓸모없는 것을 보관하는” 창고쯤으로 여겼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광기에 대한 더욱 이성적인 접근이 시작되었다. 뇌와 몸, 즉 인간 신체의 종합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약물 처방은 물론 감호소의 후신 격인 정신병원을 탈피한 치료도 시행되는 등 더 체계적인 접근과 치료가 행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다름’을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저자의 주장처럼 광기를 ‘문명 밖’으로 내모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광기와 문명’의 미덕은 광기의 역사를 정리해 그것을 ‘문명 속’에서 인식하자는 발전적 제안에 그치지 않는다. 그 방대한 광기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다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 인정할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 ‘광기와 문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