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여러 가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여행 날짜부터 지역을 선택하는 데만 수일이 걸리며 항공권을 예매한 뒤에도 여전히 많은 선택이 남아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할 때는 이 모든 것이 행복한 순간이다. 승무원인 내 주변에도 어떠한 여행이 좋은지 문의해 오는데 일정이 빼곡한 여행도 좋지만 가끔은 버리는 여행을 하라고 얘기하곤 한다.

대학 생활 중에 해외탐방 공모전에 입상해 유럽 탐방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처음 유럽을 가는 친구들이 두 명이나 있어 일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우리 탐방 목적에 맞는 기관 방문과 인터뷰는 물론, 관광도 충분히 하기 위한 최선의 일정을 짜기 위해 출발한 비행기 내에서도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다 우연히 화장실 앞에서 한 승무원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꼭 가보면 좋을 곳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그 승무원은 “충분히 많은 계획을 세우신 것 같은데 더 채우고 싶으신가요? 저라면 남는 시간이 있다면 템스 강변에 앉아서 맥주 한잔하는 여유를 가질 것 같은데요?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 않나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입사 후, 회사에서 그 승무원을 마주했을 때 당시 이야기를 했더니 비행해 보니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때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승무원 생활을 하는 지금은 누구보다도 더 그 말을 이해하고 있다.

누군가 비행 중에 나에게 내가 했던 질문을 똑같이 한다면 나는 “부족함을 남기는 여행을 한번 해 보세요. 지금 짜 놓은 일정에서 일정 하나를 빼고, 공원에 잠시 누워 보는 것도 좋아요.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보다 조그만 골목 골목을 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대한항공 승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