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없는 공무원’ 현상 조짐

“국민의 뜻에 따라 뽑힌 정권이 추진하겠다는 데 어느 공무원이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경제부처 모 국장은 최근 5·9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박근혜정부가 지난 9년간 내놓은 정책들과 정반대 방향의 공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8년 노무현정부에서 이명박정부로 정권이 넘어가던 시기에 같은 보직을 연이어 맡았던 이 관료는 “불과 몇 개월 사이 말을 바꿔가며 180도 다른 논리로 국회를 설득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25일 세종시 관가에서는 이른바 ‘영혼 없는 공무원’ 현상이 되풀이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기존 정책과 정반대 방향 정책이어서 자기모순에 빠지더라도 정권 성향에 맞춰 위에서 시키는 대로 기꺼이 추진하는 공무원을 꼬집은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박근혜정부와 노선을 달리하는 대선 주자의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어서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모양새다. 9년 전 이미 한 차례 ‘대변혁’을 경험했던 공무원들은 큰 동요 없이 그간 추진하던 정책과 반대되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논리 개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분야는 조세다. 주요 여론조사에서 1∼4위를 달리는 대선 주자들은 모두 법인세율 인상을 내걸었다. 조세 당국은 이명박·박근혜정부의 감세 기조에 따라 지난 9년간 ‘높은 법인세율은 기업의 투자·일자리 창출 의욕을 위축시키고, 기업의 해외이전을 유발해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입장(기획재정부 보도자료)을 내놓곤 했다. 정부 관계자는 “차기 정부가 세금을 올려 복지재원을 충당하겠다고 한다면 조세 당국 역시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9년 전엔 대표적 ‘부자증세’였던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축소하면서 “정부 정책이 바뀌었다면 바뀐 방향에서 지원하는 것이 공무원의 책무”라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주택 분야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력 후보들은 재계약 시 전세금 상승폭을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약속했다. 국토교통부는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미리 올려 오히려 전세난을 부추길 수 있다고 반대해 왔다.

다른 경제부처 실장급 관료는 “과거 정권 교체 시 지난 정부가 자주 쓰던 용어를 못 쓰게 막는 경우까지 있었다”며 “이번 정권에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