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방송된 한 케이블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 남성진행자는 걸그룹을 소개하며 “국방부 사기진작 차원에서”라고 말했다.

남성진행자의 발언에 장단을 맞추듯 TV화면에는 ‘남자 시청자들 만족하십니까’, ‘전국 내무반 들썩들썩’ 등의 자막이 노출됐다.

걸그룹 멤버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자 남성진행자는 “마네킹을 닮았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TV화면에는 ‘이런 인형 어디가면 살 수 있나요?’라는 자막이 나왔다.

방송의 예능·오락프로그램에서 여성을 사물화하거나 성적도구화하는 경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이 지난달 6일부터 12일까지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 케이블 2사의 예능·오락 프로그램 중 시청률 상위프로그램 총 33편을 대상으로 양성평등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를 보면 여성성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재료에 불과했다.

모니터링 결과 발견된 예능·오락프로그램의 성차별적 내용은 19건으로, 성평등적 내용 5건의 4배에 육박했다.

여성출연자에게 선정적인 역할을 맡기거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한 방송은 출연자들이 앨범재킷 사진을 촬영한다는 설정의 장면에서 여성 출연자가 표정과 자세를 선정적으로 취하도록 했다.

남성 출연자들이 과장스럽게 이를 즐기고 관찰케 해 웃음을 유발했지만 성희롱·성폭력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종합편성채널의 한 여행 관련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침대에 편히 앉아 이것저것 시키는 출연자를 ‘바깥사람’, 부지런히 움직이며 그를 챙겨주는 출연자를 ‘안사람’으로 대비시켰다. 그릇된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갖도록 했다는 비판을 받앗다.

가상부부가 출연하는 또 다른 종편 프로그램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너’, ‘마누라’ 등의 호칭을 사용했다. 반면 여성은 극존칭을 사용했다. 이는 평등해야 할 부부관계를 상하 관계로 인식케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상파의 한 개그프로그램은 뚱뚱한 여성을 등장시켜 살찐 사람은 먹는데 물불 안 가리는 것처럼 표현했다. 이 와중에 출연 여성의 외모를 조롱하는 장면이 계속 연출됐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성은 주변인에 머문 경우가 많았다.

전체 출연자 가운데 여성비율은 38.5%(180명), 남성은 61.5%(287명)로 남성이 거의 2배에 육박했다. 주진행자 성비도 여성은 31.9%(15명), 남성은 68.1%(32명)로 큰 격차를 보였다.

지상파 모 음악프로그램의 경우 진행자 1명과 연예인 판정단 12명 중 여성은 단 3명에 불과했다.

남성 판정단은 주로 음악 분야 종사자로 전문성이 강조된 반면 여성은 배우, 개그맨 등으로 감성적인 평을 내놓는 역할에 그쳤다.

양평원은 이번 모니터링에서 발견된 성차별적인 사례 일부에 대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개선 요청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아가 4월에는 어린이 프로그램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모니터링도 진행할 예정이다.

민무숙 양평원장은 “예능·오락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성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가 자주 사용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방송사 및 제작진들은 방송이 시청자들의 양성평등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하고, 건강한 웃음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 제작에 힘써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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