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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문화부 부장

인도네시아에는 대통령만큼 인기 있는 만화 캐릭터가 있다. 이름은 시 주키(Si Juki). 인도네시아 인기 웹툰작가 파자 메영(26)의 웹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웹툰 주인공 시 주키는 2014년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다. 시 주키의 출마는 물론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공간 웹툰 속에서 이뤄진 일이다. 인도네시아의 현실을 풍자하며 다양한 공약을 발표한 ‘기호 1.5번’ 시 주키는 대통령에 당선된 기호 1번 조코 위도도 후보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렸다. 실제 선거에 출마할 수만 있다면 대통령 당선이라도 될 기세였다.

오는 16일 웹툰 작가 파자 메영이 한국을 방문한다. 7박 8일 일정으로 서울, 강원, 경북 일대의 관광지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방한은 인도네시아 최대 출판사 그룹이 출간하는 ‘시 주키 산책’이란 해외여행 시리즈 만화책 작업을 위한 것이다. 파자 메영의 내한은 한국관광공사 인도네시아 지사가 공들여 성사시킨 프로젝트다. 책 출간 정보를 입수한 지사는 지난 2월 작가와 접촉해 시리즈 첫 번째로 한국 편을 발간할 것과 방한 약속을 받아냈다. 인기 캐릭터의 한국 여행 책이 나오면 한국 관광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 추진된 일이다. 치열한 국가 간 관광객 유치시장에서 만화 주인공까지 불러들인 관광 마케팅의 예다.

사례는 또 있다. 지난 연말 관광공사 일본지사는 일본의 특별한 손님을 한국으로 보냈다. 일본에서 온 관광객은 사람이 아닌 인형. ‘인형 여행’은 직접 여행이 어렵거나 여행 전 경험을 위해 자신의 인형을 대신 보내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방식이다. 인형 주인은 자기 대신 떠난 인형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받아보면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이런 방식으로 세 차례에 걸쳐 일본 인형이 한국을 방문했다. 인솔자가 인형을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한국의 관광명소에 인형을 늘어놓고 사진을 찍어 일본의 주인에게 보냈다. 투어를 끝내고 이뤄진 설문 조사에서 인형 주인 모두가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고 응답했고 그 후 상당수가 한국을 찾았다. 인형 여행이 진짜 여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 세계 관광시장은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프로모션을 동원해 관광객을 불러오기 위해 나라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급감한 중국 관광객의 대체 시장으로 떠오른 동남아시아에서는 대사관과 관광공사 지사, 현지 진출 기업까지 합심해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내 상황은 어떤가. 중국인 관광객의 빈자리를 메우려면 국내관광 활성화가 시급한데도 겨우 ‘여행 가자’는 구호나 매만지고 있는 수준이다. 이웃 일본은 지난 2015년 관광객 대상 할인 프로모션에 긴급보조금이란 명목을 붙여 2조5000억 원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4월 규슈(九州) 지진 발생 후에는 할인여행권 사업에 1800억 원을 지원했다. 대만도 중국 정부의 대만 관광 축소 조치에 국내 단체여행객에게 최고 160만 원씩을 지원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단체관광 불허 조치 이후 중국 관광객이 63.6%나 줄어들었는데도 우리 정부는 주머니를 풀 생각이 없다. 구호 몇 개만으로 과연 위기의 불을 끌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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