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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화하다(Weaponise)’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이 올해 정치 분야의 유행어로 선정한 단어다. 가디언은 요즘같이 혼란스러운 시대에서는 무엇이든 무기가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이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무기화’라는 단어는 최근 들어 정치 분야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여행금지 명령은 “무슬림과 관련된 부정확한 이야기를 무기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스코틀랜드 보수당 대표인 루스 데이비슨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반대와 스코틀랜드 독립을 요구하는 니컬라 스터전 자치 수반의 주장이 “브렉시트를 무기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기화라는 단어는 나치 독일 시대 V2 로켓 개발자로 유명한 베르너 폰 브라운이 1957년 AP통신과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미국에 투항한 뒤 미군 무기 개발을 위해 일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임무를 “미군이 가진 탄도미사일 기술을 무기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무기화라는 단어를 세상에 알렸다.

이후 국방 분야에서 쓰이던 무기화라는 단어는 1990~2000년대 생화학 무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군사 용어였던 무기화가 일상으로 파고들었고 최근 들어서는 정치적 수사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가디언은 무기화라는 단어가 가진 힘을 지적하면서 무분별하게 사용될 경우 발생할 피해를 우려했다. 가디언은 무기화라는 말은 무엇이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결국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꼬집었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토론과 대화가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기화라는 단어는 무분별하게 사용될 경우 민주주의를 해치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단어 사용만으로도 이런 우려를 낳는데 실제로 행동으로 나서는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일부 정치인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들이 자신과 조금만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협박이나 막말, 인신공격 등을 행사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이를 조장하거나 묵인하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이러한 행동은 말을 무기화한 것이다. 무기를 마구 휘두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을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다.

김석 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