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부정부패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시위는 모스크바 등 러시아 전역 99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AP연합뉴스

- 5년만에 최대 규모

99개도시 수백명서 1만명 몰려
메드베데프 총리 부패 조사 촉구
野 나발니 폭로 보고서로 촉발
내년 대선 앞두고 푸틴 먹구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기까지 99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반정부 시위로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를 비롯한 수백 명이 체포되며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정부 당국의 봉쇄에도 러시아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서 이번 시위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억압 정치에 균열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26일 러시아투데이(RT)와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99개 도시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러시아 정부가 이번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금지했음에도 99개 도시에서는 수백 명에서 1만 명에 이르는 이들이 모여 부패 청산을 요구하며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날 반정부 시위는 러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 끝에 있는 칼리닌그라드까지 러시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특히 이날 시위는 지난 23일 푸틴 대통령의 크림 반도 병합에 반대하다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데니스 보로넨코프(45) 전 러시아 하원 의원이 키예프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후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로이터 통신 등은 이날 시위가 지난 2011∼2012년 부정선거 규탄 시위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고 전했다.

이번 시위는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야권 운동가인 나발니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축재를 비판한 것이 계기로 작용했다. 반부패재단을 이끌고 있는 변호사 출신의 나발니는 보고서에서 메드베데프 총리가 국내외 저택과 포도원, 요트 등 10억 달러(약 1조1144억 원) 이상의 자산을 축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발니 보고서는 유튜브에서 1100만 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했지만 러시아 당국은 메드베데프 총리에 대한 조사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나발니는 부패 조사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을 지지자들에게 촉구했고, 이날 러시아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모스크바에서는 경찰 추산 7000∼8000명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4000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시민들은 “푸틴 없는 러시아” “푸틴은 도둑이다” 등을 외치며 거리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은 허가받지 않은 집회라는 이유로 행진을 막고 일부 시위대를 체포했다.

러시아 당국은 모스크바에서만 600명의 시위 참가자가 체포됐다고 밝혔다. 나발니도 시위에 참가하려다 경찰에 체포됐다. 나발니는 체포되기 직전 “러시아 동쪽에서 모스크바까지 이렇게 많은 시민이 나와줘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발니 체포 및 이송 과정에서 이를 막으려는 시위대와 경찰 간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 측은 이번 시위가 정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적인 시위이며 대선을 앞두고 야권 결집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정축재 의혹을 받고 있는 메드베데프 총리 측은 나발니 보고서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면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관심을 끌려는 선동”이라고 주장했다.

김석 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