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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권 정치부 부장

지금부터 30년 전, 민주화 원년으로도 불리는 1987년의 봄은 개헌 열기로 뜨거웠다. ‘호헌’을 고집하던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의 힘에 밀려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을 수용한 이후 정확히 4개월 만에 ‘전면적 개헌’이 이뤄졌다. 이것이 제헌 헌법 이후 9번의 개정을 거친 ‘제10호’ 현행 헌법이다. 민주화 30년을 맞는 의미 있는 시기에 그 민주화를 추동했던 헌법을 고치자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는 물론, 당당하게 행복하게 퇴임한 대통령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대 변화를 반영하고 민주주의 2.0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개헌은 필요하다. 이미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많은 논의가 축적돼 있다.

그런데 고조되던 개헌 논의가 최근 다소 시들하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 3당이 최근 5·9 대선과 함께 개헌 국민투표도 실시키로 합의했는데, 이것을 국민의당이 번복하면서 대선 전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선 전에 개헌론이 들끓다가 대통령이 선출되면 사그라졌던 전례가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개헌파 의원들이 대선 전 개헌에 반대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3년 임기 단축에 4년 중임 허용 등 ‘11년 대통령’ 카드를 던진 것도 이 같은 걱정 때문이었다.

3당이 성안한 개헌안은 이원집정부제 등 분권형 대통령제를 새로운 권력구조로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뽑되 외교·안보·국방 등 외치를 담당하고, 국회의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아 내치를 담당하는 제도다. 대통령의 권력을 줄여 국회, 국회의원에게 넘기자는 것인데, 1명의 제왕적 대통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0명의 제왕적 국회의원이 탄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다. 또 예산 증액 시 세목별로 정부 동의를 받았던 것을 총액에 대해서만 정부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예산을 떡 주무르듯이 주무를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도 예산 편성 때가 되면 수백 장의 쪽지로 지역구 예산을 챙기고 있다. 국회의원의 이런 꼼수가 더 노골적으로 될 것이라는 걱정도 당연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은 얼마든지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또 개헌 작업이 본격화하면 더 좋은 방안들이 나올 것이다. 역으로 이런 꼼수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도 개헌이 필요하다. 특히 정략적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 3당 개헌안이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폐지하고, 면책 특권도 제한하는 등 진일보한 조항들을 담고 있다.

1987년에 보았던 것처럼 개헌은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나서지 않으면 어렵다. 그런 상황은 다시 오기 어렵다. 그만큼 정치권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권력자는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대선 뒤 당선인 측이 권력을 내놓는 개헌에 적극 나설 것으로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대선 전 개헌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대선 후 개헌이 ‘담보’될 수 있도록 확실한 고리와 매듭을 만들어야 놓아야 하는 이유다. 국가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개헌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y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