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조계종 수행승들의 모임인 전국선원수좌회가 23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무원장 선출 직선제 이행 등 종단의 쇄신을 촉구하고 있다.

회견열고 종단쇄신 강력 촉구
“일부 권승들이 파당 만들어
종권 장악뒤 자파 세력 채워”

원로스님 다수도 힘 실어줘
선출제 논란 새 국면 들어서

대한불교조계종의 2300여 수행승의 모임인 전국선원수좌회(수좌회)가 총무원장 직선제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종단개혁의 시금석으로 여겨졌던 총무원장 선출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조계종은 과거 내부의 갈등과 분규가 심각했을 때 수좌회 스님들이 나서 해법을 찾은 사례가 있다.

이번에는 한국불교 수행의 맥을 잇는 원로스님 다수가 수좌회의 직선제 요구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파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현 총무원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깊고, 출가자 감소와 불교 신자 300만 명 감소 등 불교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다는 방증이다.

수좌회(대표 의정 스님)는 23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무원장 직선제 이행 등 조계종단 쇄신을 촉구했다. 수좌회 관계자는 “현 총무원 집행부와 여법(如法)한 해결책을 찾겠지만, 적폐를 청산할 뜻이 없다면 승려대회 등 실력행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한 ‘청정승가 구현을 위하여’란 제목의 1600여 명의 스님이 참여한 성명은 강경한 논조로 종단의 문제를 하나하나 짚고 있다.

먼저 “조계종의 일부 권승들이 파당을 만들어 종권을 장악하고, 본사와 말사의 주지까지 자파 세력으로 채워 승가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말살하고 있다”며 현 집행부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교구 본사인 용주사 주지를 필두로 심지어 종단 지도부에 속한 자까지 청정비구를 가장한 은처승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 않은가”라며 “부도덕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수좌회는 이런 비승가적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 총무원장 직선제 시행을 주장했다. 수좌회는 “전체 종도 갈마(불교에서 안건에 대한 전체의 가부를 묻는 것)를 통한 직선 선출이 가장 율장 정신에 부합한다”며 “종도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라야 산적한 적폐를 해소하고 청정승가를 구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직선제는 현 자승 총무원장의 연임 공약이었고 이전부터 수좌회의 요구이기도 했다.

오는 10월 총무원장 선거를 치르는 조계종이 지난해 총무원장 선출제도를 주제로 연 ‘100인사부대중공사’에서 직선제 지지도는 61%였고, 종단 내 총무원장 직선제특위에서 승납 10년 이상 비구·비구니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80.5%가 직선제를 선호했다. 하지만 직선제특위는 “직선제를 고집하기보다 총무원장 선출제도의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난달 사실상 활동을 멈췄다. 그동안 스님 140여 명과 재가자들이 만든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가 조계사 앞에서 직선제를 위한 촛불법회를 열어 왔다.

오는 27일 개회하는 제208회 임시 중앙종회에서 선거제도에 대한 종헌개정이 없을 경우 일정상 현행 간선제로 10월 총무원장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수좌회는 중앙종회에 앞서 사발통문을 돌려 스님들의 뜻을 모으고, 원로스님들의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좌회의 한 스님은 “이번에 사판(事判)의 일에 잘 나서지 않던 원로스님의 8할 정도가 지지했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스님들도 속속 동참의 뜻을 전해 오고 있다. 예전처럼 흐지부지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스님들의 지지가 높으며, 여법한 해결이 막힌다면 승려대회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좌회는 비구니회 등 다른 출가자 모임과 불교 시민단체 등과도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조계종은 이번 중앙종회에서 선거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불교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 집행부의 그동안 행보로 볼 때 변화가 쉽지 않겠지만, 사회 흐름도 바뀐 상황에서 종단이 직선제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사진 =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