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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대선 주자들의 선명성 경쟁이 치열하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각각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지향을 명백히 함으로써 민심의 바닷속에서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앞두고 나온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탄핵 기각 시 혁명밖에 없다’는 발언은 촛불 시위 참가자들의 분노를 자신의 지지율로 바꾸려는 의도였다. 박 전 대통령의 권위와 함께 몰락한 한국당은 태극기 시위에 참여한 박 지지자들의 세몰이로 기사회생하는 분위기다. ‘헌재가 탄핵돼야 한다’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강경 발언도 보수 세력을 결집해 보려는 한국당의 계산된 전략이다.

광화문 촛불 집회의 시작은 박 전 대통령에게 국정농단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권 주자들이 얄팍한 정치적 계산을 하는 동안 사회통합의 의무는 방기되고, 국민은 좌우로 나뉘어 투쟁하고 있다.

좌우 양극단의 계파정치는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기득권과 비기득권,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친북과 반북, 친미와 반미로 나뉜 극한의 대립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민주당의 ‘적폐 청산’ ‘부역자’ ‘기득권 대청소’와 같은 구호는 경기침체 속 국민이 가진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고 산업화세대를 기득권으로 몰아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것이다. 그 반면,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경제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산업화 세대에 대한 부정으로 포장하는 한편, 종북 프레임으로 안보 불안을 우려하는 세대를 동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광장의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가 이번에도 정권 획득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제18대 대선에서 자신이 중도라고 밝힌 응답자는 32.5%였으나, 2017년 제19대 대선을 앞두고는 47.8%로 그 비율이 늘었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유권자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 만연한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선 이러한 중도층의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가 필요하다. 이번 대선에서 중도층은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수집해 안보·경제·복지 등에 현실적이고 유연한 판단을 내리길 원한다. 중도층의 표심은 진보가 우(右)로 이동하거나, 보수가 좌(左)로 이동한 무늬만 중도진보, 중도보수가 아닌, 합리적인 근거로 정책 의제를 발굴하고 이에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과 후보를 찾고 있다.

중도층은 어떤 후보가 점증하는 안보 위협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질 수 있을지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북한의 핵 개발 위협이 계속되고 중국과 미국의 패권 갈등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THAAD) 배치에 대해 지지층을 고려한 모호한 태도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명백한 대안을 가진 후보가 누구인지 검증하고 싶어 한다. 이제는 좌우 갈등 속에 탄생한 ‘자주 외교’ 대 ‘동맹 강화’의 낡은 프레임을 넘어 한반도 안보 정세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도록 중도층이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또한, 중도층은 거의 모든 후보가 재벌 개혁이나 일자리 창출을 외치고 있는 가운데 현실적인 경제 성장의 비전을 찾도록 세력화해야 한다. 자유무역과 시장경제라는 국제 정치경제의 구조적 현실을 무시한 채 반기업정서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벌 개혁과 더불어 노동 개혁이 불가피하며, 미래세대를 배려하는 강성 노조의 양보 역시 필요하다. 한국 경제가 총체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정세에 민감한 고도의 대응 전략을 가진 후보가 누구인지 찾아 낡은 좌우 극단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

중도층의 정치 세력화는 지난해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획득한 높은 정당 지지 득표율로 이미 그 가능성이 드러난 바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안희정 충남지사가 민주당을 넘어, 광범위한 계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낡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넘어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는 대안은 갈등을 조장하는 선거 전략이 무용지물임을 보여준다. 중도층이 행사할 표심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