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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DGIST 초빙석좌교수 커뮤니케이션학

오는 5월 9일로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이 확정되면서 불과 55일 남은 기간에 대선 후보 TV 토론은 봇물처럼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틀 전인 지난 14일에 있은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후보 TV 토론은 한낱 ‘쇼’에 불과했다는 국민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전에 공통 질문들을 미리 주고, 준비된 응답을 후보들이 읽는 식의 토론은 하나 마나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국민 기만(欺瞞) 행위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겉모습만 그럴듯하고, 무지하고 무능한 대통령을 뽑을 수는 없다. 국민은 물론 비판적인 언론과 정면으로 맞서서, 어떤 주제든지 지적이고 품격 있는 언술(言述)로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말(discourse)의 능력을 갖춘 대통령을 선발해야 한다. 이것은 그냥 소망이 아니라 간절한 소망, 절망(切望)이다. 비밀주의와 말의 무능력으로 21세기 ‘투명 사회’를 이끄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발달로 진솔한 커뮤니케이션보다 정보 공작(disinformation)이 판치고 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거짓 정보를 지속적으로 퍼뜨리는 실정이다. 최고 통치자가 거짓말을 일삼을 때 국민 모두가 불신의 미치광이로 변할 수 있다는 주장(일명 ‘gaslight 효과’)까지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촛불과 태극기 사이에서 우리도 그런 불신의 미치광이 사회로 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이 너무나 절실하다.

대선 후보 간 TV토론은 사전에 짜인 각본과 연출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관점에서 후보들이 갖고 있는 기본 인식, 정책, 자질, 능력의 차별화가 생동감 있게 드러나야 성공한다. 그런 비교평가를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3인 이내의 토론회가 돼야 한다. 그것은 시간 제약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갖고 있는 비교평가에 대한 인지 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고를 때, 많은 대안이 있을수록 차별화하기 힘든 경우와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토론의 주제가 사전에 후보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야 광범위한 주제들에 대해 얼마나 준비된 후보인지 파악할 수가 있고, 동시에 후보들을 지도자로 훈련시키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의 궁극적인 목적은 당시의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를 뽑는 것이다. 하지만 부차적으로 후보자들로 하여금 공동체적인 소명감을 깊이 갖게 하고, 나아가 새로운 지도자를 발굴하고 키우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후보의 밑천이 모두 드러날 수 있는, 즉 끝장토론의 마당이 돼야 한다. 예컨대, 인터넷 생중계가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각 정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끝장토론을 개최할 수 있다. 지난 14일의 민주당 경선 후보들 사이의 부실한 토론회는 공중파 방송들을 이용했지만, 오히려 당(黨)과 그 후보들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만 키워줬다는 평가다.

치열한 점검, 명확한 비교평가가 가능하지 않은 TV 토론은 국민 사기극에 불과하다. 겉치레만 보여주는 TV 토론은 무능한 대통령을 뽑게 만들 뿐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사에서 밝혔듯이, 일반 국민의 공감과 동참 없이는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다. 그런 변화는 진솔한 말의 힘에서 나오고, 그것을 테스트하는 TV 토론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