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5·9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했던 ‘촛불 집회’(왼쪽)와 반대했던 ‘태극기 집회’로 두 쪽 난 국론을 통합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선출하고 개헌 등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합뉴스

⑤ 자문위원 제언 <끝>

■ 리더십

이념 선명성·강경대치 되풀이
진영논리 악순환 종지부 찍길


北核·사드 등 외교안보 현안도
전략적 틀서‘대립여론’조정을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사회
설득·통합의 포용 없으면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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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앞당겨진 조기 대선을 맞아 시민들의 마음속엔 다시 희망의 봄이 돌아오고 있는 듯하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비선 실세의 존재와 국정농단, 탄핵 선고까지의 소란, 특검과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해서도 일관됐던 청와대의 불통전략, 그리고 그로 인해 둘로 나뉜 시민들의 광장. 그러나 시민들은 제6공화국의 참혹했던 정치적 겨울을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극복하는 뛰어난 인내심과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이제 대한민국 시민들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국정운영 방식을 보여줄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대통령이 지녀야 할 덕목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도덕성과 개혁성을, 또 다른 누군가는 경제운영 능력과 현실적인 안보관을 강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 대통령은 무엇보다 진영논리의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민주적 과정과 절차보다는 경제적 성장과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통합과 상생의 논리보다는 이념의 선명성과 강경한 투쟁을 강조해왔다. 이제 박근혜정부와 함께 개발독재가 한국 정치에 남긴 이 불행한 유산도 정리돼야만 한다.

통합형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설득과 통합의 과정 없이는 더 이상 대통령이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는 세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핵 위기, 미·중 간 패권경쟁,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과 같은 외교안보 상의 딜레마들은 일관성 있는 전략적 틀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교안보 엘리트들 내부에서조차 통합이 아닌 반목이 더욱 일상적인 풍경이 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외교안보 부처 고위직 모임인 한반도평화포럼은 며칠 전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적폐로 지적하고, 각 부처 공무원들이 더 이상 ‘부역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차기 대통령은 이러한 관료적 반목과 대립을 극복하지 않고서도 일관된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 게다가 국가기밀의 영역으로 취급되어 오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시민들 역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시민사회 내부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한·일 위안부 협상,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같이 차기 정부가 직면할 문제들은 대립하는 여론을 조정할 리더십의 행사 없이는 더 이상 진전이 불가능하다.

한편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을 계기로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도 이념적 갈등과 대립을 보여 주었다. 이번 박 전 대통령 파면 과정에서 광화문은 탄핵을 지지하는 촛불시위와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시위로 양분되었다. 탄핵이 발표된 이후에도 탄핵 불복의 태극기가 모여 있는 서울광장과 탄핵 자축의 촛불이 켜진 광화문광장은 여전히 한국에서 사회 갈등의 역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피를 흘리지 않고 개혁을 이루어낸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공적 도약은 이해와 이념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리더십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4당 체제로 분열돼 있는 국회 또한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을 어렵게 할 것이다. 상대방과의 정책적 협의 그 자체를 정치적 패배로 인식하는 과거의 관행이 변화하지 않는 한 어떤 정책의 추진도 불가능하다.

정권을 잡은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념과는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칼날을 간다면 차기 정부 역시 블랙리스트를 만든 박근혜정부와 다를 것이 없다. 분열을 넘어 통합의 리더십만이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다.

탄핵 전후로 드러난 여러 분열의 징후들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갈등을 치유할 통합의 리더십이 더욱 간절히 필요함을 보여준다. 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도 친박(친박근혜)계 국회의원들과 대통령 변호인단은 탄핵 불복을 선동하고 있다. 일부 대선 후보들은 집권당의 도덕적 파산을 지렛대 삼아 극단적인 진영논리로 유권자의 분노를 자극하는 분열의 정치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과 노동자, 노년세대와 청년세대, 보수와 진보를 대립시키는 이분법적인 담론들이 단순히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난맥상들을 통해 드러나듯, 대중의 불만과 불안을 획책하는 선거 전략은 오히려 승자의 정치적 해결 능력 역시 제약한다. 이것이 분열의 정치가 초래하는 진정한 비용이다.

이번 대선은 한국이 반목과 갈등의 구체제 정치를 답습할 것인지, 새로운 비전과 실천 의지를 가진 지도자를 통해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선거다. 광장의 촛불은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책임만을 문제로 삼고 있지는 않다. 공적 권력을 사적 집단의 권력으로 사유화하고 불통과 극한대립, 파벌 싸움으로 점철해 온 제도정치와 리더십의 변화 역시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고 국민의 분노를 화해로 바꿀 정치의 시작은 통합을 화두로 삼고 사회 통합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