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박수 받으며 떠난 대통령이 없나

이미지 크게보기

이석연 변호사, 前 법제처장

지난 금요일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대통령직을 상실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0년 가까이 된 현재까지 우리는 열한 분의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을 지켜봤다. 불행히도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청와대를 떠난 대통령은 한 분도 없었다. 박수는 아니더라도 국민의 마음속에 아쉬움을 남기면서 떠난 대통령도 없었다. 임기 말이 가까워질수록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쫓기듯 황망히 떠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한국 정치의 후진적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허탈감이 엄습한다.

권좌에서 물러난 후에도 심판론이니 몸통론이니 하는 여론의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편안한 일상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우리 국민의 심성이 모질어서 그런가, 아니면 영웅을 키우지 않는 우리의 고질적인 풍토 때문인가? 나는 그 일차적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고 본다. 그다음으로 총리를 비롯한 측근들에게 있다. 한국 대통령 실패(失敗)의 가장 큰 원인은 대다수 국민의 뜻을 저버린 대통령의 독선적인 인사 정책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었다. 이는 5년 단임의 현행 대통령제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어떤 형태의 대통령제 정부 형태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달이다.

중국 춘추시대부터 진(秦)나라 통일까지의 550년 역사를 풀어쓴 ‘열국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자고로 흥하고 망한 나라를 보라. 모든 원인은 어진 신하를 등용했느냐, 아니면 간신을 등용했느냐에서 판가름났도다.’ 통치자가 어떤 인재를 쓰느냐에 그 정권, 더 나아가 그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군인즉신직(君仁則臣直), 즉 바른말 하는 신하가 있어야 성공한 군주가 된다. ‘자치통감’에 나오는 명언이다.

대통령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지도자가 어질다는 것은 성품이 완벽해 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완벽하고 흠이 없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어질다는 것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수 있는 넉넉함과 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아량과 자신의 잘못을 시정해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직언하는 자를 내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를 곁에 둔 지도자들은 대업을 성취할 수 없음은 물론 나라를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통치자 곁에는 천 사람의 예, 예 하는 사람보다 바른말 하는 한 사람의 선비가 필요하다면서 ‘통치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거든 그가 기용한 사람을 보라’고 했다. 만고의 진리다. 인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라의 소중한 재산이자 보물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16대 대통령은 “유능하고 뛰어난 인재들이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권한은 대통령인 나에게 없다”면서 라이벌을 비롯한 반대당의 인사들을 폭넓게 기용해 내전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 대통령들의 인사 정책 잘못은 주변의 지인들이나 그들이 추천한 인사들을 자질과 적소(適所)에 대한 검증 없이 무리하게 기용하거나 기용하려 한 데서 비롯됐다. 이것이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신뢰 추락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널리 인재를 구하지 않고 자신의 구역에서 심기 편하게 할 사람을 골라 쓰려다가 초래된 인사 실패를 인사청문회 탓으로 돌리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민의(民意)를 제대로 파악해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국정에 반영하는, 다시 말해 직언과 실천력을 지닌 인물이 주변에 있어야 성공한 대통령으로 이어진다고 확신한다. 우리 헌법은 정권(권력)이 특정 집단이나 특정 정파에 의해 독점 행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권을 잡았다고 마음대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참여의 기회균등에 바탕을 둔 국민적 합의만이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민주개혁과 사회 통합을 이루는 길이다. 역대 한국 대통령의 실패는 참여의 기회균등 헌법 원리를 망각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제 어느 누가 집권하든 진보·보수, 좌우를 뛰어넘는 통 큰 국정 운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는 철 지난 이념 조각이나 파벌, 파당 의식에 매몰돼 편 가르기식 국정 운영이나 정치 행보를 보이면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연대는 급속히 허물어질 것이다. 대권 후보들에게 이 점, 맹성이 있기를 촉구한다.

문화일보

문화일보

왜 박수 받으며 떠난 대통령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