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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 동아대 명예교수

이상하게도 나는 설거지를 할 때나, 걸레질을 할 때 시가 잘 온다. 아니, 시가 흐른다고 할까. 다음의 시도 설거지를 할 때 나온 시다. 아니 콸콸 흐르는 수돗물처럼 흐른 시이다.

‘내 몸을 받드느라/ 정말 힘들겠소, 내 발목이여// 내 정글 같은 마음 편히 모시느라/ 내 허리여 심장이여 얼마나 힘들었소?/ 내 신장이여, 내장들이여, 배여, 눈썹이여, 눈까풀이여/ 내 생각을 받드느라 높이 솟은 이마여/ 내 옷, 내 가방, 무지개빛 희망을 걸어 맨 단단한 내 어깨여, 끈질긴 내 손목이여, 힘줄이여, 힘줄도 새파란 내 팔이여/ 내 못생긴 발톱이여, 손톱이여/ 생각걸개여// 하루도 편히 쉴 날 없이/ 숨을 거둬들이고 내뱉는,/ 하루종일 편히 쉴 날 없이/ 피를 뿜어내느라 정신이 없는 나의 심장이여, 허파여, 비정규직 내 쓸개여/ 언제 없어질까 몰라 늘 발발 떨고 있는 내 쓸개여/ 아 종신의 인공무릎이여// 달아나기만 달아나기만 하는 잠이여/ 달아나기만 달아나기만 하는 꿈이여, 꿈의 날개여, 꿈같은 당신들이여/ 신처럼 나를 받들고 있는 상처들이여’[졸시 ‘발목, 기타기타’ 전문]

설거지를 하거나, 걸레질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이완’이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그러다 보니 내 식탁은 책상이기도 하다. 메모지니, 책이니, 탁상달력이니, 잊지 말아야 할 하루 일정이니, 영수증이니, 카드대금 청구서니, 스마트폰이니, 연필꽂이니, 식탁 매트니… 가득 어지럽게 올라앉아 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물 묻은 손으로 메모하는 탓에 종이들은 잔뜩 얼룩이 져 있다. 나는 늘 저 식탁부터 청소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러려면, 위에 쓴 것들은 꼭 거기 있어야 하는 바람에 다시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시를 좀 못 쓰더라도 깨끗해야지, 신이 오셔서 복을 주려면 우선 오시는 길이 깨끗해야지’ 하는 생각이 앞장서지만, 그걸 또 메모하느라 책상의 종이는 볼펜을 끌어안는다. 그래서 나의 집은 늘 종이로, 책으로, 먼지로, 볼펜으로 붐빈다.

내가 지금껏 가장 감동한 ‘청소’는 대학 연구실의 조교 임 양의 청소다. 어느 날 세면기로 갔다가 깜짝 놀랐다. 세면기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었다. 그 옆에 늘 후줄근하게 앉아 있던 커피잔들이며 스푼 같은 것들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연구실의 흰 벽도 얼룩이 지워져 환했다.

그 임 양 다음으로 청소를 잘해야지 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은 내가 한때 살던 빌라의 미화원 아줌마다. 그는 내가 출근할 때나 귀가할 때나 늘 무언가를 닦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벽이며, 계단, 난간…. 빌라는 늘 반짝반짝했다, 상당히 낡은 아파트임에도. 나중에 보니 그녀와 경비원은 부부였다.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거의 십 년 동안이나 월급을 올린 일이 없고, 명절도 되고 했으니 경비원 부부의 월급을 만 원인가 올리자는 의견을 누군가 반상회에서 제의했다. 그러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우리를 향해 부르짖었다. “월급을 인상하다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일하라고 하면 아줌마, 아저씨들이 줄을 선다구요.” 앞집 여자였다. 큰 시장에서 부부가 큰 가게를 경영한다는, ‘알부자’라는 소문을 나도 들은 적이 있는 이였다. 그러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럼요. 요즈음 얼마나 취직하기가 어려운데요.” 그들에게 “깨끗하니까, 이 빌라값이 이 동네에서 꽤 비싼 거예요” 하려다가 나는 그 앞집 여자의 잔뜩 화난 얼굴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걸레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한 할머니도 있다. 그 할머니는 내가 30대 때 잠시 우리 집을 돌본 분이었는데, 회사에서 돌아오면 나는 늘 그녀가 빨아놓은 걸레의 흰색에 감탄하곤 했다. 도대체 어떻게 걸레를 빨기에 표백제에도 안 담근 걸레가 저렇게 하얗지? 나는 고개를 흔들곤 했다. 어느 날이던가, 그 할머니의 걸레 빠는 현장과 마주쳤다. 비누칠을 잔뜩 한 걸레를 한참이나 비비고 주무르고 그러고 나서도 빨랫방망이로 10여 분 두드리고 다시 비비고, 주무르고 한 열 번을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야 깨끗한 물에 헹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걸레와 마치 사랑하는 것도 같고, 싸우는 것도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걸레를 빨다니… 나는 감동했다. 그 후에 나도 그렇게 걸레를 희게 해보려고 애써 보았지만, 그 할머니의 걸레같이는 안 되었다.

어느 대기업의 작고한 회장은 누군가 그룹 경영 비결을 묻자 다음과 같이 간단히 답변했다는 것도, 가끔 나의 어지럽기 짝이 없는 식탁책상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감동적인 말이다. “한 번 쓴 공구는 제자리에, 깨끗이.” 그 회장이 그룹을 이룬 비결의 토대는 그 한마디였다. 만약 내게 인생에 대해 물으면 어떤 답을 가장 간단하게, 한마디로 할 수 있을까. “한번 쓴 시간은 하루의 제자리에, 미련도 후회도 말고, 깨끗이!” 그 회장의 어법으로 말해놓고 보니, 너무 길다.

아무튼 인생의 청소는 신이 오시는 길, 또는 꿈이 오시는 길을 깨끗이 제자리에 비워놓는 일이다. 꿈을 그대의 가장 깨끗한 잠의 길 제자리에 두기를…. 그 잠의 길, 꿈 곁에서 우리는 언제나 혼자 걷는, 그러나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것을.

밥 딜런의 노래 가사 하나가 떠오른다.

‘그래, 이제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하니 모든 이들이/ 전부 그런 꿈을 꾸는 듯해요/ 모두가 사라져 버린 곳에서/ 혼자 걷고 있는 자신을 보는 꿈 말이에요/ …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렇게 말했던가요/ 나를 당신 꿈속에 있게 해주면 내 꿈속에 당신이 있게 해줄 것이다/ 아니 이건 제가 한 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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