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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 앤터니 비버 지음 김슈태 박리라 옮김 / 글항아리

제2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발발해, 독일·이탈리아와 함께 전쟁을 도발한 추축국의 하나였던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미국 태평양 함대 미주리호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할 때까지 7년간 전 세계는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사망자 수만 어림잡아 6000만여 명. 이로 인한 전 세계의 경제·사회적 손실, 개인과 국가의 흥망성쇠, 인류 도덕성 말살 등의 피해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책은 저명한 전쟁 역사가인 저자가 수십 년간 연구해온 경험과 실증적 사료에 근거해 집대성한 노작(勞作)이다. 시간 순서에 따라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을 상세하게 서술했다. 무려 1300여 페이지에 달한다. 책을 한 손으로 들기에 무거울 정도다. 하지만 기존의 무미건조한 연대기와는 다르다. 인물의 묘사가 사실적이고, 사건의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총 50장 중 첫 번째인 ‘전쟁의 발발’이다. 1939년 6월 1일부터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던 9월 1일까지의 얽히고설킨 사건들을 일목요연하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보여준다. 이를 둘러싼 정치·군사적 배경은 물론 등장 인물의 심리, 그날의 날씨까지 묘사해 마치 현장을 지켜보듯 생생하다.

이 지점에서 다른 역사서 서술과 비교되는 것도 눈에 띈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의 발발은 폴란드 침공보다 한 달 전 만주-몽골 국경지대인 할힌골(노몬한)에서 벌어진 소련과 일본의 전투에서 비롯했다. 이 전투의 승패는 향후 제2차 세계대전의 흐름에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소련에 패하며 ‘북진’ 대신 서유럽과 동남아를 공략하는 ‘남진’ 정책으로 돌아섰고, 태평양의 미 해군까지 공격했다가 원자폭탄을 맞고 항복했다.

아돌프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독일의 팽창 정책과 만행이 주로 서술되고 있으나 일본이 식민지국을 상대로 자행했던 끔찍한 전쟁범죄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패전이 임박했는데도 일본군이 버티고 있는 지역에서는 특히 여성에 대한 잔학 행위가 계속됐다”며 “군량이 부족해지자 현지 주민이나 포로를 식량으로 여겼다”고 폭로했다.

책은 우리가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전쟁에 대해 포괄적인 지식을 전달해준다. 그러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설득력을 높인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책의 머리말에 나온 한 한국인의 사진과 기막힌 인생역정이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했을 때 한 젊은 병사가 미군 공수부대에 투항했는데 그는 한국인 양경종이었다. 양경종은 18세에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다가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군에 붙잡혀 강제 복무한 후 다시 독일군 포로가 돼 프랑스로 파병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2011년 개봉된 강제규 감독의 영화 ‘마이웨이’의 모티프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이 무시무시한 역사적 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가를 양경종이 강렬하게 각인시킨다”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