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무표정 출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憲裁 주요결정 분석 … “일률적 잣대 없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지 8일로 정확히 석 달이 지났다. 그간 국회로부터 소추안을 넘겨받은 헌법재판소가 17차례 변론기일을 열었고 이제 마지막 선고만 남겨둔 상황이다. 인터넷과 SNS 등에는 헌법재판관들의 이념과 정치 성향, 출신 지역 및 재판관 지명 경로 등에 바탕을 둔 예상 결과가 나돌고 있다. 그럴듯한 근거를 붙여 ‘기각 몇 명, 각하 몇 명’ 등의 갖가지 분석이 나오지만 법조계에서는 탄핵 심판 결과는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진보, 보수 등 재판관들의 성향만 갖고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며 “보수 성향인 법조인들이 박 대통령의 크지 않은 법률 위반에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관들이 꼼꼼히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오직 법리와 헌법 정신에 비춰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31일 퇴임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을 제외한 8명의 헌법재판관 중에는 보수 성향이 과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념 성향과 달리 이들이 내렸던 주요 결정을 분석해 보면 재판관들의 결정을 일률적 잣대로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서 헌재의 결정은 고도의 정치 행위이자 고차 방정식”이라며 “헌재는 엄격한 사법기관이면서 동시에 여론에 민감한 ‘정치적 사법기관’”이라고 평가했다.

◇정치 성향은 보수가 우세= 일반적으로 ‘5기 헌재 재판관’ 중 김이수 재판관만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야당 추천 몫의 김 재판관의 성향은 주요 결정에서도 나타난다.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에서 김 재판관만 유일하게 정당 해산에 반대했다. 헌재가 2015년 5월 해직 교사는 조합원 자격이 없다며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근거가 된 법률 조항에 8 대 1로 합헌 결정을 내릴 때도 김 재판관만 위헌 의견을 냈다.

박 전 소장의 퇴임 후 소장 권한대행을 맡은 이정미 재판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의 주심을 맡은 강일원 재판관은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진보적 성향의 법조계 관계자들은 “중도라기보단 상대적으로 덜 보수적인 성향”이라고도 분류한다.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데이터 저널리즘 랩 한규섭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구팀이 5기 재판관의 구성이 완료된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헌재의 639건 결정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이진성 재판관도 이정미·강일원 재판관과 함께 중도 성향으로 분류됐다. 연구팀은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재판관 사이의 상대적 개념으로, 이들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면서도 다른 보수 성향 재판관과 상대적으로 다른 의견을 많이 낸 것으로 집계됐다.

서기석·안창호·조용호·김창종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상대적으로 조용호·김창종 재판관이 더 ‘강성’ 보수로 꼽힌다. 지난해 7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는데, 당시 언론과 사학이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에 대해 김창종·조용호 재판관만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김 재판관은 대구·경북에서만 판사 생활을 한 향판(鄕判) 출신이고, 안 재판관은 검사 출신이다.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박 대통령이 추천해 재판관에 임명됐다.

◇“정치 성향만으로 예측 불가”=재판관들이 내린 주요 결정을 분석할수록 탄핵 심판 결과 예측은 어려워진다. 김영란법 중 배우자의 금품수수를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한 조항과 수수가 가능한 금품의 가액 기준을 시행령이 정하도록 한 것과 관련해서는 김이수·이정미·안창호·김창종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냈다.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받는 김이수 재판관, 가장 보수 성향으로 여겨지는 김창종 재판관이 같은 의견을 냈다. 헌재 관계자는 “이 같은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이념과 정치 성향보다는 재판관 개개인의 법철학과 헌법·법률에 기초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당이자 보수정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국회의원의 심의·의결권을 침해당했다며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은 각하 5, 기각 2, 인용 2의 의견으로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위헌이라고 했다.

2015년 2월 헌재는 간통죄 처벌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당시 유일한 여성 재판관인 이정미 재판관과 유일한 검사 출신 안창호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다. 성매매 처벌법에 대해서 헌재는 6 대 3으로 합헌이라고 결정했는데, 김이수·강일원·조용호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다. 이유는 좀 달랐는데, 김이수·강일원 재판관은 성 구매자에 대한 처벌은 합헌이라며 다수 의견에 동조하면서도 성 판매자 처벌에 대해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성 판매 여성을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반면 조 재판관은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성매매를 처벌하는 것은 입법자가 특정한 도덕관을 확인하고 강제하는 것”이라며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2014년 3월 야간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에 대해서는 재판관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김창종·강일원·서기석 재판관은 “위헌적인 부분을 일정한 시간대를 기준으로 명확하게 구분해 특정할 수는 없다”며 전부위헌 결정을 내렸다. 보수 성향의 김창종·서기석 재판관이 전부위헌 의견을 낸 것은 기본권 보호에 충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조계 밖에서 볼 때는 보수 성향 재판관들이 집회, 시위를 최대한 금지하려 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실제 재판관들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전부위헌 의견을 낸 것”이라며 “일반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재판관들의 결정을 재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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