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50년 야산 이달(왼쪽에서 두 번째)이 제자 정동한의 결혼식 주례를 선 뒤 찍은 기념사진. 야산의 유일한 사진이다. 한길사 제공

- 주역 대가의 전기 ‘난세의 사상가…’ 출간

구한말 새 사상 필요성 느껴
주역에 기초한 ‘홍역학’ 창시
공동농장·독립운동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 개입
‘대자연 무저항주의자’로 살아

근대 주역(周易)의 대가로 꼽히는 야산(也山) 이달(李達·1889∼1958)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한 전기가 처음 출간됐다. 야산은 홍역학(洪易學)을 독학으로 창시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상을 실천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주역을 잘 모르더라도 광복과 전쟁을 예견하고 축지나 차력 등의 신비로운 행적 때문에 야산의 일대기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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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이 세상을 떠난 지 60년째에 ‘난세의 사상가 야산 이달: 주역으로 새 세상을 밝히다’(한길사)를 펴낸 이는 야산의 손자인 이응국 한국홍역문학원 대표다. 역사학자 이이화 씨가 야산의 넷째 아들이고, 이 대표의 숙부이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28일 문화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야산은 질풍노도의 세월을 살며 나약한 선비로 머물지 않고 때로는 기인(奇人)으로, 때로는 의인(義人)으로 세상사에 관여했다”며 “역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해 후천사상을 구체화하고, 유불선(儒佛仙) 합일을 제창해 사상적 통합을 모색한 사상가이자 예언가요, 시인이자 교육가이며 경세가(經世家)였다”고 설명했다. 야산은 역사의 가혹한 혼란기에 억압받고 비천한 대접을 받던 우리 민족과 백성에게 낮은 것(陰)이 높아지는(陽) 후천개벽의 희망을 밝히고 바람막이가 되고자 했다.

구한말에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야산은 난세에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자 전국을 돌며 수련과 주역공부에 전념해 후천개벽의 시기를 제시하고 홍역학을 완성했다. 이 대표는 “야산은 우리가 고초를 겪은 근대가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교차하는 변혁기로 보았고, 공자의 ‘춘추’부터 자료를 역산해 1948년을 후천의 시작으로 보았다”며 “후천은 ‘양’(陽)에서 ‘음’(陰)으로 변하는 ‘소개벽’으로, 하늘보다 땅이, 제왕보다 백성이, 남자보다 여자가 더 중하게 변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건국과 이후의 변화는 이와 일치한다.

야산이 창시한 홍역학은 서경의 홍범구주(洪範九疇)와 주역에서 따온 것이다. 이 대표는 “‘홍범’은 인사(人事), 곧 정치의 도리를 오행으로 풀이하고, 주역은 천지자연의 이치를 음양학으로 설명한 것”이라며 “야산은 변혁기에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며, 물질문명과 과학이 성하는 만큼 철학의 뿌리가 깊어야 한다고 보았다. 천도와 인사를 합한 홍역학은 현대에 더욱 의미가 있는 생명사상”이라고 설명했다.

야산은 일제강점기 뜻한 바 있어 선물거래인 기미(期米)로 돈을 모아 20여 가구를 이끌고 철원군으로 들어가 공동노동·공동분배 방식으로 집단농장의 이상향을 실험하기도 했다. 또 형평운동(衡平運動·백정의 계급적, 민족적 해방운동)과 독립운동을 금전적으로 돕기도 했다. 이 대표는 “후천개벽 사상이 진보적인 성격을 갖듯, 야산도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며 “하지만 많은 제자를 받으면서 좌·우이념으로 구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야산은 일제강점기 총칼을 들고 싸우지 않았지만 다양하게, 적극적으로 세상에 개입했다. 스스로 이를 ‘대자연 무저항주의자’라는 주역적인 삶이라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승만이나 김구의 합작 요구에 응하지 않고 정치 활동을 멀리한 것도 역사는 이미 우주 차원의 큰 흐름이어서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근래 주역에 대해 ‘주역점’을 먼저 떠올리며 비과학적으로 보는 데 대해 “본래 점은 작게는 자신을 닦는 수신지학(修身之學)이며, 크게는 세상을 경륜하는 경세지학(經世之學)이다. 각계의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주역을 접해야 하늘과 사람의 올바른 길을 겸허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역연구와 강의에서 ‘야산’의 뒤를 잇고 있는 이 대표는 우리나라의 정유년(丁酉年) 한 해 흐름에 대해 “萬家夢破一聲鷄(만가몽파일성계), 닭이 우니 도적이 물러가고 새벽이 밝아온다. 정유년은 모두가 새롭게 변화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