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권의 ‘대표적 낙하산’으로도 불린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이 잠적 8개월 만에 검찰에 출두했다. 그는 27일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 조사를 받았는데,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알고도 대출을 해 줘 결과적으로 부실을 더 키우고 산은에 대해서도 배임 행위를 했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그는 산은 회장 임기도 끝나기 전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한국 몫 부총재로 ‘낙점’됐는데, 정부 당국자들도 경악했을 정도였다. 그런 AIIB 부총재 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지난해 6월 휴직계를 내고 유럽·미국 등지를 돌며 도피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이런 홍 전 회장이 탄핵 정국 와중에 나온 데 대해 ‘꼼수’란 지적이 나오고, 그동안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분석도 있다.

그의 주요 혐의는 대우조선이 2015년 사내의 회계 비리 정황을 파악해 3조 원대의 회사 손실을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회계조사를 하지 않고 그해 10월 2조2000억 원을 지원해 산업은행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모인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됐을 뿐 산업은행은 들러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 전 회장으로 인해 날아간 한국 몫 AIIB 부총재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5년에 걸쳐 37억 달러(약 4조2000억 원)를 AIIB에 내기로 하고 다섯 자리인 부총재 중 한 자리를 확보했으나, AIIB는 곧 프랑스 출신 국장을 부총재로 승진시켜 한국 몫 부총재를 박탈했다.

서강대 출신인 그는 2013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경제분과 인수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런 그의 승승장구에는 박 대통령과의 관련설이 끊이지 않았다. 서별관회의 참석 인물이 당시 핵심 실세였기 때문에 그동안 정부가 홍 전 회장의 잠적을 눈감아 준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모든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수사는 검찰의 독립성과 역량을 보여줄 또 다른 시험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