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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명동역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재미로에 있는 재미랑은 만화거리의 핵심 공간이다. 만화의 머리글자인 ‘ㅁ’과 ‘ㅎ’을 표현한 노란색 장식의 3층 건물 안에는 만화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과 작가들의 작업실, 휴게실 등이 마련돼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퇴계로 20길 ‘재미路’와‘재미랑’
서울에서 제일 재미난 길은? 재미로! 말장난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서울의 한복판인 명동에 재미라는 이름을 가진 길이 있다. 지하철 명동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해서 남산 애니메이션센터를 연결하는 중구 퇴계로 20길의 별칭이다. 약 450m 길이의 이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뽀로로’부터 만화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식객’과 ‘공포의 외인구단’까지 만화작가 70여 명의 작품 속 인물들이 건물과 골목 여기저기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재미로는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지난 2013년 12월 만화의 거리를 조성하면서 생겨났다. 재미로가 만화로 특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낙후된 골목길을 활성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당시 새로운 한류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 만화를 도입하면서부터였다. 만화거리 조성에 동조한 만화가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작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주민들도 자신의 건물 벽면과 공터를 제공하여 벽화와 캐릭터 조형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협조하였다.
재미로가 시작되는 명동역 3번 출구 근처에 상상공원이라고 불리는 작은 광장을 마련하여 재미로의 시작을 알리는 퍼빌리언(정자식 조형물)을 두었고 재미로 입구에 있는 호텔의 벽면에는 잘 알려진 식객과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을 담은 거대한 벽화를 설치하여 재미로가 만화의 거리임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차장과 공터를 활용하여 조형물을 세우고 골목의 담장과 석축에는 만화의 대표적인 캐릭터를 그려 넣었다. 그 결과 재미로 곳곳에는 인기 만화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낡고 단조로웠던 거리가 만화로 인해 서울의 특색 있는 거리로 변신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재미로와 함께 선보인 재미랑은 만화거리의 핵심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노란색으로 치장한 3층의 건물 안에는 만화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과 웹툰을 포함한 만화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실과 작업실, 그리고 보고 싶은 만화책을 골라 편하게 볼 수 있는 만화휴게실을 갖추고 있다.
만화휴게실에는 옥상을 활용한 테라스가 있어 남산타워를 포함한 남산의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노란색 장식은 만화의 글자를 이루는 자음인 ㅁ과 ㅎ을 표현한 것이라 하는데 얼핏 보기에는 ‘몽’으로 읽힌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만화 속에서는 종종 이루어지기도 하니 꿈으로 해석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닐 게다.
복합문화공간인 첫 번째 재미랑이 선보인 이래로 2015년에는 도깨비를 모티브로 만든 사쿤 브랜드를 소개하는 재미로 사쿤이 두 번째로 조성되었고, 2016년에는 인기 웹툰의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재미랑 3호점인 웹툰공작소와 관람객들이 직접 만화를 그려볼 수 있는 4호점인 삼박자만화공방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2호점부터 작가들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체험이나 상품 판매를 겸하고 있어 더욱 다양한 만화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올해는 더 많은 만화작가들이 입주, 운영하는 5호와 6호를 연달아 개관하니 재미로가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만화를 자주 보는 것은 부모님께 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혼이 나는 일에 속했다. 하지만 글자로 빼곡한 위인전보다는 즉각적으로 공감되는 만화가 더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었다. 만화영화 홍길동을 보면서 만화 속 주인공이 종이를 벗어나 스크린에 움직이는 모습으로 다가왔을 때 놀라움은 경이에 가까웠다. 요즘은 많은 인기드라마가 웹툰을 포함한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웹툰을 즐겨보는 사람들을 보니 밤새 만화를 보다 들켜서 혼이 났던 기억이 더 멀게 느껴진다.
TV 오락프로에 인기 웹툰 작가가 고정으로 출연하고 명작이 만화로 만들어져 글씨보다는 그림 보기에 더 익숙한 젊은 세대의 인기를 끌고 있는 오늘날, 만화가 갖는 문화적인 힘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낙후된 가로에 만화를 입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만든 재미로의 재미랑이 해를 거듭하면서 6호점까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문화콘텐츠로서 만화의 생명력을 증명하고 있다. 7호, 8호, 그 이상으로 지속적인 만화 콘텐츠의 개발로 재미로가 유수한 문화거리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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