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자연을 담다 색과 색은 서로 얽히고설켜 자연미를 나타내고 서서히 마르면서 서로의 영역을 구분해 벽화를 만들어 낸다. 신기한 아름다움 속에 그는 자신을 자연으로 내던져 하나가 된다. 2017년 작. 김영화 화백

일본 오사카(大阪)시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고베(神戶)시 가코가와 인근에 위치한 히가시히로노 골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라운드는 할 수 없어 코스를 둘러보다가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시니어 레이디 티’가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 골프장은 티잉 그라운드 6곳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60세 이상의 여성 시니어를 위한 곳이었다.

일본 대부분의 골프장엔 시니어 레이디 티잉그라운드가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별거 아닐 수 있지만 티잉그라운드 설치에 있어 공평하고, 객관적 배려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시니어 레이디 티잉그라운드가 있는 곳은 서울·한양골프장이 유일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코스설계에 있어 티잉그라운드는 4곳이면 된다. 챔피언 티, 레귤러 티, 시니어 티, 레이디 티로 구성해 운영했다. 그러다가 ‘블루 티’라는 것이 생겨났다. 주로 30∼40대의 싱글플레이어와 좀 더 도전적이고 허세가 있는 골퍼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국내 골프장의 티잉그라운드 운영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5곳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배려와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챔피언, 블루, 레귤러, 시니어 등 4가지 티잉그라운드는 남자 골퍼들만을 위한 것이다. 레이디는 실력에 상관없이 오로지 한 곳을 이용하라는 뜻이다.

일전에 70세가 넘은 여성 시니어 한 분과 라운드를 하면서 들은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내가 젊은 40∼50대와 레이디 티에서 골프를 하려면 힘을 두 배 더 써야 한다. 힘에 부쳐 어느 날부터 골프장 나오기가 점점 싫어지더라.”

수족관 속 달팽이를 자극하면 잠시 움츠러들지만 계속 자극하면 아예 적응해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적응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지금 국내 골프장은 적응된 달팽이와 같지 않은가 반문해 본다. 코스를 설계하는 분들도 생각해 볼 일이다. 생각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누군가 먼저 배려하고 디테일한 서비스까지 실행한다면 가장 진정성 있는 가치가 아닐까. 골프장마다 최상의 서비스와 명문 골프장 지향을 외친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고객 입장이 생략된 곳은 너무도 많다.

중국 속담 중 ‘천천히 가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을 걱정하라’는 말이 있다. 노년층의 여성 골퍼가 늘어나는 만큼 현실 감각에 맞는 티잉그라운드 운영이 요구된다. 왜 한국 골프장엔 시니어 레이디 티가 없는 것인지. 조금만 생각하고 살펴보면 골프장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