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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선 논설위원

요즘 점심이나 저녁에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 식사나 술을 하는 자리에서 ‘여론 법정’을 여는 것은 조심스럽다. 미리 참석자들의 성향이 대체로 같은지 파악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탄핵 심판을 둘러싸고 얼굴을 붉히는 논쟁이 일 수 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식탁에서 찬반으로 갈려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주말마다 열리는 촛불 시위와 태극기 시위 현장은 가장 큰 여론 법정이다. 각각 ‘탄핵 인용’ ‘박근혜 구속’, ‘탄핵 기각’ ‘특검 해체’ 구호가 터져 나온다.

모바일 법정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가까운 한 친구는 탄핵 심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생각이 같으면 단체 카카오톡 방에 초청하려는데 괜찮겠냐고 물어왔다. 어느 대학 단과대 출신 선후배들이 가입해 있는 대화방에서 누군가가 한쪽 편을 드는 글을 올리자 반대편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기’를 하는 것도 보았다.

여론 법정은 법률 법정과는 다르다. 무죄 추정이나 증거의 원칙이 잘 통하지 않는다. 탄핵 인용 또는 기각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에 맞는 사실이나 증거만을 받아들이고 꿰맞추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의 결론에 부합하거나 유리한 것만 보고 믿으려 한다.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자극하기 위한 ‘가짜뉴스’도 만들고 괴담도 퍼뜨린다. 이를테면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8명 가운데 2∼3명이 기각 쪽으로 기울었다는 식이다.

사법부와 헌재는 여론으로부터 독립해서 재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론 법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법 감정에 어긋나는 판결을 내리면 비난을 받는다. 우리 사법부도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뢰를 잃지 않으려면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률 법정에서는 최종 판결이 내려지면 더 이상 다툴 방법이 없다. 그러나 여론 법정에서는 법률 법정의 결론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 촛불 시위와 태극기 시위가 극단으로 치닫는 요즈음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유다. 헌재의 결정이 정의, 또는 최선이나 차선이 아닐 수도 있다. 헌재는 곧 ‘예’ 또는 ‘아니요’ 가운데 하나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두 여론 법정은 어느 경우라도 승복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법원과 헌재의 결정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종식하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