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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김정일이 생전에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오늘부로 너를 후계자로 임명하노라” 하고 선포했더라면 운명이 달라졌을 수도 있는 김정남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살(毒殺)됐다. 이로써 김정은은 핏줄을 지키고 이른바 ‘백두혈통’의 적자(嫡子)로 거듭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그의 ‘독살 통치’에 쏠려 있다. 자신의 지위를 흔들었다는 죄목으로 고모부마저 처형한 김정은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김정은은 리영호 전 인민군 총참모장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했으며, 최영건·김용진 내각 부총리 등 분야별·계급별 ‘문제아’들을 숙청하는 방식으로 권좌를 지켜왔다. 최근엔 김원홍 국가보위상을 조사, 강등시킴으로써 자신의 권력 기반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은 누구도 예외가 없음을 보여줬고, 이를 통해 2인자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이후 남은 문제아가 해외를 전전하며 3대 세습을 비판하던 김정남이었으니, 그는 김정은의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김정남이 ‘레짐 체인지’를 말하는 미국이 숨겨둔 카드이거나 중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둔 ‘비장의 무기’라면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게 김정은의 판단이었을지 모른다. 망명설 역시 ‘없었다’로 일축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이유 외에도 김정은이 김정남을 독살했을 가능성은 쿠알라룸푸르 공항의 CCTV 화면과 우리 국민이 기억하고 있는 북한의 테러 역사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에 체포돼 자신의 이름이 도안 티 흐엉이라고 밝힌 암살 용의자를 보면 일본인 여권을 갖고 KAL기에 올랐던 김현희가 떠오르고, 1997년 김정일 생일과 연계된 2월에 피살된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도 오버랩 된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김씨왕조의 이러한 악행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점에서 김정남의 피살은 몇 가지 과제를 남긴다.

우선, 김정남의 죽음을 악성 테러로, 북한을 테러국으로 규정하고 유엔과 국제사회로 가져가야 한다. 이는 김정남이 독살된 장소가 북한이 아니라 말레이시아이기 때문이며, 김정남의 시신이 조기에 북송(北送)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김정남의 부검 결과가 국제사회에 철저히 보고되고 용의자들에 대한 체포와 조사가 모두 이뤄진 다음에 이를 토대로 말레이시아나 유엔을 비롯한 제3자의 ‘김정남 독살 보고서’가 작성돼야 한다. 이렇게 작성된 보고서가 ‘장성택 관련자와 그 가족 1000여 명을 고문·학살했다’는 탈북자들의 고발장과 함께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해진다면 그 효과도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김정은의 테러 위협은 현재형이며 핵을 가진 김정은이 권력 유지를 위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자각해야 한다. 지금껏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가문과 혈족마저 독살·처형하는 김정은의 이복형 독살이 대한민국의 김포와 인천 공항에서 자행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김정은을 ICC에 제소하고 반인륜(反人倫) 범죄자로 낙인, 처벌하는 과정이야말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구하는 의미 있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끝으로, “비무장지대(DMZ) 철책선에서 노루 한 마리만 뛰어도 신문에 나던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도 그 위험성을 말하는 정치인도, 언론도 없다”고 한 고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의 말을 환기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