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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베토벤, 리스트, 쇼팽,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시공을 초월한 명곡들이 흘러나오고, 두 남자가 노래를 한다. 은은한 조명 아래 말끔한 슈트 차림의 남성이 피아노를 친다. 부드러운 현악 6중주가 객석을 에워싼다. 클래식 연주회가 아니라 뮤지컬 공연. 지난 4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라흐마니노프’(사진). 앙코르 공연답게 연일 만석이다. 지난해 가장 주목받은 창작 뮤지컬로, 예그린뮤지컬어워드 극본상과 한국뮤지컬어워즈 작곡·음악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을 지난 11일 관람했다. 캐스트는 박유덕(라흐마니노프), 정동화(니콜라이 달 박사), 박지훈(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출신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은둔생활 3년을 소재로 한다. 그동안 그는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로부터 상담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단 한 줄에 불과한 이 기록이 상상과 만나 90분짜리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제2의 차이콥스키로 불리던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연주회 실패 후 돌연 잠적했는데, 달 박사는 그를 다시 피아노에 앉히기 위해 최면 요법을 쓰고, 격려의 말을 자주 해줬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 만큼 뮤지컬은 전반적으로 따뜻하다. 천재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좌절과 실패의 순간을 위로하려는 듯.

공연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넘버(삽입곡) 사이사이에 녹아든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명불허전이다. 그의 대표적인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을 차용해 만든 넘버들도 조화롭다. 젊은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아름다웠으며, 단 두 명의 배우가 채우는 무대 역시 밀도 높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주팀을 무대에 올려 마치 클래식 공연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도 신선했다. 클래식 팬이 이 새로운 형태의 뮤지컬을 맛보면, 관람 영역을 확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라흐마니노프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가 과거에 대한 고백이나 “당신은 사랑받고 있어요”라는 달 박사의 뻔한 대사 정도에 그치는 건 아쉽다. 가사 역시 ‘힘을 내세요’ 식의 동어가 반복되어 전체 극을 단조롭게 만든다. 그러나 음악에 훨씬 더 비중을 두는 관객이라면 표 값이 아깝지 않을 공연이다. 3월 12일까지.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사진=HJ컬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