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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산업부 차장

지난달 26일 기획재정부는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미국산 수입을 늘리기 위해 ‘산업용 기기, 수송 장비 등 교역 활성화 방안 검토’라는 문구를 넣었다가, 회의가 끝난 뒤 삭제하는 ‘촌극(寸劇)’을 벌였다. 통상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주형환 장관이 이끄는 산업부가 승리한 셈이지만, 그 과정에서 기재부와 산업부 실무자 모두 장관에게 호된 질책을 들어야 했다. 향후 대미 통상 협상의 길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통상 마찰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장기간에 걸쳐 큰 규모의 무역 흑자를 볼 경우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 흑자는 2013년 205억400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200억 달러를 넘어선 뒤, 2015년에는 258억10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232억6000만 달러로 다소 줄었지만, 전체 무역 흑자(894억1000만 달러)의 26%나 된다.

최근 ‘폭탄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미국산 수입을 늘리거나, 대미 수출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수출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에, 미국산 수입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무엇을 늘리느냐다.

정부는 이미 셰일가스, 석탄, 항공기 등의 미국산 수입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으로 논란의 핵심은 자동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우리나라 대미 무역 흑자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철도용이나 궤도용 외의 차량과 그 부분품·부속품’(품목 코드 87)으로 197억1000만 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일 통상 마찰 당시를 돌이켜보면, 미국은 수입 확대뿐만 아니라 수출 지원 축소를 우리나라에 대한 ‘압박 카드’로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에서 몇몇 섬나라나 도시국가를 제외할 경우,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십 년간 수출을 통한 경제 성장 드라이브를 걸면서 수출 촉진책도 남발돼왔다. 우리나라에서 수출 지원을 위한 금융, 세제 등 각종 정책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기관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굳이 대미 통상 마찰을 우려해서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도 이젠 수출장려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手術)을 단행할 때가 됐다. 수출 금융만 하더라도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기관이 몇 개인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다.

미국이 “미국산 수입을 확대하라”고 주장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수출지원 체계가 불공정하다”고 나온 뒤에 수출지원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나서면, 너무 늦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미 1980년대에 일본에 대해 미국산 수입 확대를 주장하다가 먹히지 않자 “미국산의 수입을 어렵게 만드는 일본 사회의 관행(慣行·비관세 장벽) 자체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다행히 미국이 통상 압력이 본격화할 때까지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은 것처럼 보인다. 경제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연내 한반도 배치라는 긴박한 안보·군사 이슈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수입 확대 방안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수출지원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하는 일이 시급하다.

haed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