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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은 소설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는 지금 방심위에 와 있습니다. 농성을 하고 있는 시민들을 강제 해산시키려 한다는 제보가 있어, 이렇게 급히 달려와 방송을 합니다.”

희미한 불빛에 드러난 사람은 뿔테 안경을 쓴 소박한 용모의 남성이다. 무선 마이크는 간간이 소리가 끊기고, 카메라에 비친 영상 또한 고르지 못하다. 그는 도로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며 눈에 보이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전과 달리 경찰차가 많이 와 있습니다. 오늘 새벽 세 시에 강제 퇴거시킨다고 합니다. 보시는 대로 경찰차가 하나, 둘, 셋, 넷…. 뭔가 작전회의를 하고 있고, 의경들이 차 안에서 대기 중입니다. 주변에는 경비가 삼엄합니다.”

버벅거리는 말투이긴 하지만 그가 내심 상황을 다각도로, 사실에 근거해서 정직하게 전하려고 애쓴다는 것이 느껴진다. 머지않아 경찰들이 기습적으로 농성장을 덮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긴장감. “시민 여러분, 이곳으로 많이 나와서 힘을 보태 주세요.” 강하고 절박하게 들리는 호소. 이 농성은 나흘째(현재 13일째)로 접어들었을 당시까지도 제도권 미디어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왜, 무엇 때문일까.

방송회관 로비. 바닥에 대형 태극기가 펼쳐져 있고, 각종 현수막과 피켓, 손으로 쓴 벽보들이 기둥과 유리창에 빽빽하게 붙어 있다. ‘JTBC 손석희를 구속하라’ ‘태블릿 PC 조작보도 조사하라’ ‘편향 종편 폐지하라’. 물론 JTBC 측은 이런 주장을 반박하면서,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인사 일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결국 사법 당국이 명예훼손 여부를 가리게 됐다. 그런데도 바닥에 이불을 깔고 상당 기간의 농성을 예고하는 분위기다. 농성자들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대부분 여성이고, 남성도 소수 섞여 있다.

왜 그럴까. 벽보들이 외치고 있는 메시지도 심각하지만, 제도권 미디어들이 모른 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사와 재판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그러면 중요한 단서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사회가 잘못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든 미디어, 50개 신문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 지상파와 공중파 방송들까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잠잠하다.

그것이 내가 ‘카톡’ 소리에 귀를 세우게 된 이유다. 곳곳에서 개인이 찍어서 올리는 수많은 유튜브 영상들은 우리 제도권 언론들이 무엇을 외면하며, 무엇을 과장 보도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알려준다. 요즘 나는 아마추어들의 1인 방송을 자주 보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원천리 찾아가는 그 수더분한 남자의 부지런한 발과 따뜻한 가슴에 신뢰를 보낸다. 각종 농성장이나 집회에서 그가 내미는 마이크를 머뭇거리며 받아든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 휠체어를 탄 팔순의 노인, 태극기를 온몸에 두른 씩씩한 청년…. 평범한 이들의 분노는 이념이 아니라 갓 피운 숯불처럼 참된 마음이다. 내가 부끄러워진다.

아마도 나뿐만이 아니라, 울음처럼 들리는 저 ‘카톡’ 소리의 행진은, 우리 손안의 휴대전화를 막강한 병기로 변모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병기는 생업의 장에서 시민들을 사회적 관심의 장으로 끌어내어, 거짓과 날조된 소문을 비교 분별하게 하고, 공인의 됨됨이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를 공유하게 한다. 그야말로 감춰진 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최근 카톡이 전송한 영상물과 문자 몇 가지를 소개하면, 김일성 장학금 수혜자 명단, 교회에 침투한 간첩조직, 태극기 집회에 돈 받고 나왔다는 보도(그에 따르면 나는 20만 원을 받은 셈이다) 들이다. 중요한 문제 제기들이지만 주류 언론에서는 접하기 힘들다.

며칠 전엔 방심위 농성자들을 강제 해산시키는 현장을 생중계하는 영상을 받았다. 건장한 여경 넷이서 연세 많은 한 비구니의 사지를 누르고 끌고 가는 과정에, 아래위 옷이 모두 벗겨졌고, 이 수모의 장면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다. 경찰 1000여 명이 건물을 둘러싸고 출입을 통제해 난방과 전기를 끊고, 음식물 반입도 모두 통제, 마실 물조차 없다고 한다. 바깥에서 추위에 떠는 가족과 시민들을 위해 임시로 공유지에 설치한 텐트까지 강제 철거하는 중에, 아녀자들을 넘어뜨려 밟고 쇠막대로 때리기까지 하는 모습도 담겼다.

“너희가 민주 경찰이냐, 세월호 천막은 왜 3년째 가만두고 있느냐.”

“경찰이 시민을 때려요.”

이 아수라장에서, 마이크를 든 남자가 흥분한 시민들을 진정시키고 있다.

“애국시민 여러분, 경찰들도 우리의 아들딸들입니다. 그들은 시키는 일을 할 뿐입니다. 화가 나더라도 경찰 몸에 손을 대면 안 됩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있는 까닭이 뭔가. 초 단위로 쪼개어 전파를 팔아야 하는 제도권 방송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장시간의 생중계. 한 사람의 자발적 수고에 의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뉴스가 전달되고 있다. 비친 현장 자체가 스스로 옷을 벗고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농성 현장임에도 이곳에서는 법치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절제의 미덕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그것도 ‘밥 짓다가 뛰쳐나온 아줌마들’에 의해. 아줌마들은 약해서 맞는 것이 아니다. 법을 지키다 보니 맞는 것이다.

새 메시지를 알리는 ‘카톡’ 소리!

내 귀에는 두려움 없는 크고 작은 정들이 동시다발로 우리 사회의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부수는 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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