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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정치부 부장

알렉시스 토크빌과 아돌프 히틀러는 110년의 시차를 두고 세계를 예언했다. 토크빌은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이제 두 개의 강대국만이 존재한다. 러시아인과 영미인들, 이들 각각이 언젠가는 세계 절반의 운명을 좌우하리라고 생각한다’(1835년)고 기록했다. 히틀러는 마르틴 보르만 관방장관에게 ‘독일제국의 패배로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에서 민족주의가 출현할 때까지 강대국은 둘만 존재할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그들이다’(1945년)라는 말을 남겼다.

영국 노동당 데니스 스키너 의원의 지난 1월 31일 발언으로 히틀러의 유언이 떠올랐다. 그는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을 향해 “무솔리니와 히틀러 두 명의 파시스트가 영국 도시들에 공습을 퍼부을 때 계단 밑에 숨었던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히틀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무솔리니에 비유됐다. 85세 스키너 의원의 머릿속에 있는 2차 세계대전의 기억이다. 트럼프는 ‘반(反)이민 행정명령’ ‘중국·일본 환율조작’ 등 연일 초강경 발언과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민들의 57%가 반이민 행정명령에 찬성하는 라스무센 조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트럼프의 출현은 지금 세계가 전인미답의 경계로 향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토크빌과 히틀러의 선험적 전망은 현실로 나타났다. 세계는 미·소 두 진영으로 갈렸고 냉전의 질서 속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잠자는 중국’을 인식하지 못했던 토크빌의 예언은 1991년 소비에트 붕괴로 효력을 상실한다. 반면에 히틀러는 조건적 변환점으로 민족주의를 붙였다. 현시점에서는 히틀러의 관점이 세계를 설명하는 데 더욱 적합해 보인다. 중국은 소련이 사라진 자리에서 중화주의 부활을 외치며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팽창주의로 나서고 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니즘(미국 우선주의)의 뒷면에는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신(新)국가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스키너 의원의 시각에서 본다면 게르만 민족주의를 내세운 독재자 히틀러와 다를 바 없다. 민족의 개념은 미국에서 아메리카라는 단어로 치환되고 있다.

2일 미국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서울에 도착했다. 그의 손에는 북한 핵미사일, 사드 배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이 들려 있다. 매티스 장관은 3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수사를 동원해 강고한 한·미 동맹을 역설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원하는 답안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사드 배치 확인과 방위비 증액이다. 직선주의자 트럼프는 매티스를 통해 ‘한국의 친구’가 미국과 중국 가운데 누구인지 물을 것이다. 국제정치는 제로섬 게임의 원칙이 작동한다.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렵다. 한국의 차기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으로 회귀한다면 트럼프는 한국을 배제한 대북정책을 새로 짤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불행한 한·미 갈등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운명은 오랜 세월 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역학관계에서 규정됐다. 북핵 문제에서 남북 관계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북·미 관계의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 트럼프의 세계가 일회성이 아니라면 혼돈의 정치 속에서도 새로운 질서에 대비해야 한다. 어느 편에 서야 할지는 자명하다.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