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새 희망 신지식인들이여 일어나라. 새 희망을 향해 나아가자. 2017년 작. 김영화 화백

진정한 정유년 새해가 밝아온다. 신라시대부터 설은 존재해왔다. 조선시대에는 4대 명절 중 설날이 가장 컸다. 설은 ‘사린다’ ‘섧다’ ‘낯설다’에서 왔다고 한다. 어원적 의미로 보면 축제보다는 첫 시작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 더 깊다. 그래서일까 설날엔 하얀 가래떡을 먹는다. 흰색은 순수를 뜻한다. 정직과 깨끗함의 상징이다. 우리 조상들은 새해 첫날을 위해 한두 달 전부터 두루마기에 빳빳하게 풀을 먹인 새하얀 동정을 달아 놓았다. 하얀 버선을 준비하고 한복 바지 곱게 매주는 대님까지 준비하면 설 준비의 반은 끝났다. 준비는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 민족은 이날 만큼은 맘껏 웃는 해학의 날로 승화시켰다.

시를 쓰는 한 지인은 엉뚱하게도 골프가 설날과 닮아서 좋고 그래서 설날 아침엔 꼭 골프장을 찾는다고 한다. 궤변 같지만 또 들어보면 일리가 있다. 지인은 가까운 부모·형제가 없다. 어렸을 때 길을 잃어 혼자가 됐고 아직도 가족을 찾지 못했다. 가정을 꾸려 지금은 처자식과 잘살고 있지만 늘 가족 완전체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지인은 하얀 골프볼과 하얀색의 그린 홀을 보면 너무도 순수해서 좋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이 설을 위해 준비하는 한두 달의 과정처럼 골프 역시 준비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정작 골프장에서는 성적에 관계없이 웃고 떠들 수 있어 골프장은 마치 설날 아침 고향 같은 곳이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설날엔 떡국을 주는 골프장을 찾아가 따듯함을 나누고, 천지 만물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설날 아침 꼭 라운드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고 보니 골프장은 순수하고 깨끗한 우리의 고향 같다.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성실함도 들어 있다.

그 지인은 설날 때마다 어릴 적 고아원에서 받았던 ‘종합선물세트’가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골라 먹는 재미도 있고 뭔가 꽉 찬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싸우지 않고 함께 나눠 먹고 좋아하는 것을 서로 바꿔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고 말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참 우울하고 힘든 과정이 많았다. 이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고 모두가 행복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매년 새해 아침 골프장을 찾는 시인에게는 골프장이 고향이다. 골프장에서의 라운드가 새해 새롭게 하는 첫발인 셈이다. 하얀 골프볼과 하얀색의 홀을 향해 퍼트하는 게 그에겐 힐링이자 행복이다.

설날이 되면 벽장문은 바쁘다. 맛난 것들을 숨겨 놓고 빼 먹는 그 재미 때문이다. 아마도 종합선물세트가 인기를 끈 것도 바로 우리의 어려웠던 정서를 담고 있어서일 것이다. 지나고 보면 그리 고급스러운 맛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 어릴 적 추억이 더 소중하고 그립다.

매해 설날 골프장을 찾는 그 시인에겐 골프장이 고향이다. 우리도 앞으로는 골프장에 갈 때 부모·형제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간다면 더 즐겁고, 더 아련하고,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