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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은 오늘날 자명한 역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수많은 사진과 기록이 남아 있고, 피해자들의 인터뷰나 영상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겐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역사조차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의 역사저술가 데이비드 어빙을 필두로 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다.

최근 영국에서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디나이얼(부인·Denial)’이 개봉돼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화는 미국의 어느 대학 강의실에서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는 여교수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에모리대 역사학과 교수인 데버러 립스타트는 어빙과 같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을 혐오하는 학자다. 유대인인 그는 강의 중 “민주 사회에서 의견을 표출하는 건 권리가 아니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누구나 홀로코스트에 대한 ‘의견’은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다. 그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니까.”

그는 1993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을 비판하는 책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며(Denying the Holocaust)’(펭귄북스 출판사)를 펴냈는데, 이를 본 어빙은 영국 법원에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거짓”이라며 저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립스타트는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홀로코스트를 증명해야 했고 수많은 역사자료와 사진, 증언을 모았다. 그리고 2년간의 긴 싸움 끝에 승소했다.

립스타트 교수의 치열함도 아름답지만 영화에서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빙의 낯설지 않은 뻔뻔함이다.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증거를 가져오라는 어빙의 모습은 난징(南京)대학살,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일본 우익 세력의 모습만큼 익숙하게 다가온다.

최근 일본의 아파(APA) 호텔은 삿포로(札幌)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우리 선수단이 숙박하게 된 것을 알고도 호텔 객실에 극우성향의 책을 비치했고, 가와무라 다카시(河村隆之) 나고야(名古屋)시장은 “난징대학살은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망언을 했다.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인 27일이 올해는 새삼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다.

손고운 기자 songon1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