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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사회부 부장

2015년 광복절 특별사면 발표를 며칠 앞둔 어느 날 금융권에서 일하는 지인이 전화를 걸어 “SK 최태원 회장이 특사로 나오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될 것 같다”고 했더니 “SK의 위험도를 높이는 쪽으로 관련 보고서를 다시 써야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오너가 출소하는데 회사 위험도가 올라간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의문은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 검찰과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풀렸다. 2015년 8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단행한 특사로 다음 날 0시 5분에 출소한 최 회장 앞엔 청와대가 준 많은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 회장은 출소 사흘 뒤에 반도체 분야 46조 원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11월 7일엔 SK하이닉스가 미르재단에 68억 원을, 다음 해 2∼4월엔 SK텔레콤 등이 K스포츠재단에 43억 원을 출연했다. 앞서 2014년에 건립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청년희망재단 출연, 2015년 7월 설립한 지능정보기술연구원 출연까지를 ‘사면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계산에 넣는다면 최 회장 구출에 들인 돈은 천문학적이다.

문제는 이런 출연들이 SK의 자발적 성의 표시가 아니라, 청와대의 요구에 따른 사면거래였을 정황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특검팀이 입수한 녹음파일에 의하면 사면 발표를 사흘 앞둔 8월 10일 김영태 SK 부회장은 영등포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최태원 회장을 면회해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우리 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왕 회장’은 박 대통령을, ‘귀국’은 사면을, ‘숙제’는 사면에 따라 SK가 치러야 할 대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박 대통령이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독대한 7월 24일자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 수첩에 ‘노인회장-생산적 노인. 132만 명’이라고 적혀 있고, SK그룹은 최 회장 사면 닷새 뒤에 ‘저소득 노인용 주택·복지 혼합동 아파트 건설사업’ 재원 마련 1000억 원 기부 증서를 국토교통부에 전달한다.

회삿돈 수백억 원을 횡령해 불법 개인 선물투자에 썼다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던 최 회장이 수감 2년 7개월 만에 박 대통령의 ‘대기업 경영자의 사면 제한’ 원칙에 맞지 않게 교도소 밖으로 나오자 많은 비판과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사면을 의결한 박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청와대에서 사면 명단이 내려오지 않은 첫 사면이며, 대통령의 평소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졌다”는 등 서로 민망할 얘기를 했다.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은 사면 발표 이후 가진 질의 응답에서 “대통령비서실의 쪽지 사면이 없었던 유일한 사면이었다”고 찬양했다. 돌이켜보면 고위 검사 출신 법무부 최고위 공직자들이 국민을 상대로 새빨간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사면은 국가원수가 형사소송법이나 형사법규에 의하지 아니하고 형 선고 효과 또는 공소권을 소멸시키거나 형 집행을 면제시키는 것으로, 왕조시대 군주의 낡은 유물이며 삼권분립 또는 사법권 독립을 침해하는 예외적인 현상이다. 최소한에 그치고 엄격하게 집행해야 할 사면권을 대통령이 거래했다면 이 또한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가 된다.

sdg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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