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 스키어가 슬로프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있다. 스키와 스노보드는 겨울 스포츠의 꽃이지만 부상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이용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뉴시스

- 안전사고 실태와 판례로 본 책임소재

스노보드 부상 경험률 64.6%
스포츠 평균 57.3%보다 높아

혼자 넘어지는 사고 50%이상
이용자끼리 추돌도 40% 넘어

“스키장, 주의의무 다 했다면
법적 책임 면하는 게 일반적”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친 A 군과 가족이 스키 강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A(당시 5세) 군은 2015년 12월 경기도에 있는 스키장에서 1시간가량 스키를 배운 후 혼자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A 군의 부모는 강사가 어린아이에게 혼자 슬로프를 내려가도록 강요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고가 일어난 장소는 리조트에서 가장 거리가 짧고 경사도도 완만한 슬로프로 평지에 가까운 곳”이라며 스키 강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스키와 스노보드는 겨울 스포츠의 꽃으로 불린다. 그러나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위험한 스포츠다. 그런데 앞의 판례처럼 스키장 사고는 스키장이나 강사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가 드물어 이용자가 치료비 등을 부담해야 할 때가 많다.

한국스포츠안전재단이 지난해 8월 공개한 ‘2015 스포츠 안전사고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스노보드 이용자의 부상 경험률은 64.6%다. 축구(71.3%), 격투기(66.7%), 검도(66.7%)에 이어 4번째로 많다. 스키와 스노보드를 합친 부상 경험률은 59.9%로, 10명 중 6명이 다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체 스포츠 평균(57.3%)보다 높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2013∼2014, 2014∼2015, 2015∼2016 등 최근 3시즌 동안 스키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모두 2만9065건으로 연평균 9688건에 이른다. 3시즌 동안 발생한 사고를 보면 경사가 심한 고급 코스에서 발생한 사례는 3727건으로 전체의 12.8%에 불과했다.

중급 코스가 1만2758건(43.9%)으로 가장 많았고, 초급 코스는 1만2580건(43.3%)으로 비슷했다.

한 스키장 관계자는 “초급 코스엔 서툰 사람이 많고 인파로 인해 충돌이 잦다”며 “경사가 심한 상급 코스 이용자는 숙련도가 높아 오히려 사고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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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부상도 많다. 3시즌 동안 골절은 4240건이 발생해 전체 사고의 14.6%였고, 탈구는 1427건(4.9%)이었다. 다른 부위에 비해 후유증이 큰 머리 부상은 913건(3.1%)이었다. 연령대별로는 20대 미만 어린이·청소년 사고가 많은 편이다. 2014∼2015, 2015∼2016시즌 스키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1만8350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어린이·청소년 사고는 5188건(28.3%)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사고 발생 시 스키장에서 피해를 보상받기는 쉽지 않다. 법원은 스키장의 과실이 명확한 경우에만 배상책임을 인정한다. 민법 제758조 제1항에 규정된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와 관련해 법원은 대체로 공작물이 용도에 따라 통상 요구되는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일 경우에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스키장이 규정에 따라 시설을 설치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해 뒀다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

실제 대법원은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 안전펜스에 부딪혀 사망한 한 남성의 유족이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스키장 안전망이 지면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치돼 있었으나, 규정을 따랐기에 간격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2011년 2월 스노보드를 타다가 조명탑에 부딪혀 사망한 청소년의 유족이 낸 소송 역시 유족이 패했다. 원고는 안전헬멧을 착용하지 않은 피해자가 스노보드를 타는 것을 스키장 측에서 막았어야 했다고 주장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스키장 운영자가 이용자에게 안전모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의 이용을 중지시켜야 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피해 배상을 받으려면 스키장의 책임이 구체적으로 인정돼야 한다. 2013년 12월 스노보드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허리와 다리가 골절된 B 씨는 소송 끝에 1억4000만 원을 배상받았다. 갑자기 만난 둔덕에 중심을 잃어 미개장 부분으로 진입해 배수로에 빠져 다쳤는데 스키장이 개장 부분과 미개장 부분 사이에 안전펜스 등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상을 받아도 사고자의 과실이 일부 인정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치료액 등을 전액 받기는 어렵다. 스키와 스노보드를 타는 것 자체가 위험을 동반해 이용자의 책임이 완전히 배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키장 안전사고와 관련한 법원 판결문에는 대체로 ‘스키는 운동 특성상 슬로프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등의 위험이 수반되는 것으로, 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스키를 탄다’는 문장이 나온다. 법무법인 로고스의 전용희 변호사는 “위험을 전제하고 탄다는 점에서 스키장이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3시즌 동안 발생한 사고 중 혼자 넘어진 경우는 1만6385건으로 전체의 56.4%에 달한다. 다른 이용자와 부딪힌 경우는 1만1937건(41.1%)이었다. 그런데 혼자 넘어져 발생한 사고, 이용자와 부딪힌 사고는 스키장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용자 간에 발생한 사고는 당사자끼리 과실 비중을 따져 책임을 나누게 된다. 대체로 앞에 있던 사람보다는 뒤에서 오던 이용자의 책임을 더 묻는다.

이에 스키장의 책임을 과도하게 면해 주고 있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적지 않다. 이용자에게만 무리하게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소비자원은 피해 신고가 꾸준히 접수되자 2014년 11월 소비자 위해정보를 내놓기도 했다. 사고 발생이 잦고 이용자가 다칠 확률이 높은 만큼 스키장이 이용자 보호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스키장이 대체로 법적인 책임을 면하는 것과 달리, 소비자들은 스키장 환경을 부상의 주요 이유로 생각한다. ‘스포츠 안전사고 실태 조사’에서 스키장 사고 이유를 묻는 질문에 ‘바닥이 미끄러웠다’가 57.9%로 가장 많았고, ‘활동하기에 적절한 사람의 수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24.7%였다.

스키와 스노보드 사고는 순식간에 발생해 동행자가 없다면 사고를 당했을 때 정당한 권리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특성상 속도가 빠르고 시야가 좋지 않아 사고를 당한 사람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CCTV가 설치돼 있지 않거나 설치돼 있더라도 해상도가 낮아 활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전 변호사는 “가해자가 자리를 이탈하는 사례도 있고, 목격자 없이는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사고는 스키·스노보드 인구 확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스포츠 안전사고 실태 조사’에 따르면 스키장에서 부상을 경험한 사람의 52.8%가 주기 및 횟수를 줄였다고 답했고, 16.0%는 운동을 그만뒀다. 다친 뒤 해당 스포츠 활동을 줄인 이용자 비율은 스키·스노보드가 모든 운동 중에 가장 높았다. 공교롭게도 스키장 이용객은 2011∼2012시즌 686만3112명 이후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2015∼2016시즌 이용객은 492만2064명에 그쳤다.

조성진 기자 threem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