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아이러니’

갈등빚던 보잉 100만달러 등
대기업들 ‘환심 사기용’ 기부
오바마때의 두배 달하는 액수

“기득권세력 타파하겠다더니
금권정치 길 열었다” 지적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미국민 비호감도가 55%에 달한 가운데 트럼프의 취임식 기부금은 1억 달러(약 1184억 원)를 넘겨 역대 최대규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다수의 지지자가 소액 기부를 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와 갈등을 빚었던 보잉 등 대기업들이 막대한 기부금을 내놓은 것이라, 사실상 트럼프가 기업들의 ‘환심 사기용’ 기부 경쟁을 방조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6일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취임식에 5∼6명의 기업인이 거액의 돈을 기부해 기부금이 역대 정권 중 최고 규모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100만 달러 기부를 약속했으며, 석유 기업인 셰브런은 50만 달러를 기부했다. 또 카지노 재벌 셸던과 미리엄 아델슨 부부는 이들보다 많은 금액을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첫 취임식 때 5300만 달러를 기부받은 것과 비교했을 때 약 두 배에 달하는 액수다.

보리스 엡슈타인 취임식 준비위 대변인은 취임식에 사용하고 남은 금액은 자선재단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데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일반 대중과 달리 취임식 기부자들은 취임식과 관련한 각종 행사를 통해 트럼프 정부 내각 인사들과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인 라인스 프리버스가 주재하는 오찬 리셉션,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가 주재하는 만찬 등 트럼프 내각 유력인사들의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특히 보잉은 대통령 전용기 납품가격 문제로 트럼프와 갈등을 빚은 바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한 기업인들의 ‘기부 경쟁’이라는 일침이 나오고 있다.

NYT는 트럼프가 대선캠페인 때 워싱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부패한 기득권세력을 타파하겠다고 외쳐온 것과 달리 전임 정권들보다 더 노골적으로 기업 돈을 모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와 인터뷰한 소비자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로비스트 크레이그 홀먼은 “대통령, 부통령, 내각에 대한 접근 권한을 파는 것과 다름없다”며 “규제도 없는, 매우 뻔뻔한 접근권 판매”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트럼프 측은 로비 단체의 기부는 원천 금지했지만, 개인 기부금은 무제한으로 받아들여 소수의 초부유층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금권정치의 길을 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로비스트, 기업들의 기부를 원천 차단하면서 개인 기부금 액수도 5만 달러를 넘길 수 없도록 제한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편 취임식을 앞둔 트럼프에 대한 국민의 비호감도는 3명의 전임 대통령들과 비교해 최고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는 55%로 나타나, 호감도 40%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직전 78%의 호감도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치다.

손고운 기자 songon1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