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臺灣)을 여행하던 한국 여학생들이 현지 택시기사가 준 음료수를 마시고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만으로도 안타깝고 개탄스러운 일인데, 피해자들이 주(駐)타이베이 한국대표부에 14일 새벽 3시40분에 전화하자 담당자는 “신고(여부)는 알아서 하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외에서 예기치 못한 변을 당한 어린 여학생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공관에 전화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공관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재외 국민을 보호해야 할 영사(領事) 업무가 이 지경이라면 관리·감독해야 할 외교부 책임도 가볍지 않다. 그런데도 외교부 측은 “추가 연락이 없어 14일 오전부터 수차례 통화를 시도한 끝에 경찰서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즉각 현장으로 출동했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피해 여학생들이 추가 연락하지 않고 대만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 자체가 대표부의 무책임을 거듭 보여줄 뿐이다. 심지어 “자는데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느냐”고 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대만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전년보다 33% 급증하며 80만 명을 넘겼다. 그만큼 여행객 안전에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다. 지난해 12월 주칠레 참사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는 등 공관원들의 기강해이가 문제시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로 정부의 권위가 약해진 만큼 재외 공관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부는 이번 사건의 진위를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 엄단은 물론 지휘 책임까지 묻는 등 일벌백계(一罰百戒)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