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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갑 경북대 교수 정치학

새해 들어서도 우리 사회는 연일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들끓고 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대통령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지 오늘로 한 달이 넘었는데도, 주말마다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탄핵 찬반의 열기는 조금도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창 진행 중인 헌재(憲裁)의 심리가 끝나고 탄핵으로 결정 나게 되면, 정국은 곧 바로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현 시점에서 대선 준비에 가장 앞선 쪽은 다수의 잠룡이 포진해 있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당헌당규강령정책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 룰을 손질하는 것으로 대선의 닻을 올렸다. 선거를 통한 정권 획득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는 정당에서 대선을 준비하는 것보다 화급한 일이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여타 정당들도 곧이어 대선 준비에 나설 것이다.

그런데 곧이어 본격적으로 시작될 우리의 대선과 지난 연말에 끝난 미국 대선이 야릇하게도 오버랩 되는 것은 필자만의 걱정이고 우려일까? 오랫동안 우리 정치의 모델로 여겨왔던 미국의 대선을 희대의 ‘난장판’이요 초특급 ‘막장 드라마’라고 마음껏 조롱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다가올 우리의 대선 정국에서도 우리 스스로 한없이 부끄러워하고 세계가 조롱하는 장면이 연출될 것 같은 징후(徵候)들이 벌써부터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문자 테러와 폭력 행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이 문 전 대표를 비판하거나 정치적인 입장이 다른 비문계(非文系) 의원들을 향해 수천 통의 막말 문자를 보내고 욕설의 의미가 담긴 18원의 후원금을 송금하는 등의 집단행동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공당 지지자들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어이없다. 또 다른 행태도 있다. 경북 구미에서 문 전 대표를 태운 차량을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이 가로막고, “문재인 빨갱이” “탄핵 무효”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차량에 발길질을 하는 등의 폭력을 행사한 일이다. 이 또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태다.

우리 사회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1987년 체제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등 적지 않는 성취를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는 형식뿐만 아니라 과정과 내용에 있어서도 더 높은 수준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요컨대, 현재 우리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앤서니 기든스의 표현만을 잠시 빌려서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democracy)라고 할 수 있다. 국가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겠다고 경쟁하는 정당 스스로가 민주주의 정당이 돼야 하고, 이러한 민주국가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대선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 유력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시대정신을 내걸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게 될 것이다. 이에 편승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맹목적으로 우상화하면서 상대를 적대시하는 광신적 추종 세력들이 창궐하게 되는 것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혹시라도 이러한 광신적 추종 세력들의 언동을 묵시적으로 용인(容認)하면서 그들에게 기대어 대권을 잡아보려고 꿈꾸는 이가 있다면 그 후보야말로 잠재적인 독재의 원흉(元兇)이요, 민주주의의 적(敵)으로서, 집권 자격이 없다. 민주주의는 타협적이고 이성적인 토양에서만 자랄 수 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