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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정치부 부장

한국 외교는 일본에 당당해져야 하고 한국 정치는 중국에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 연초부터 시끄럽지만 한·중 대립, 한·일 갈등을 불러온 사드와 위안부 문제의 분출은 한국이 탄핵정국으로 들어가면서 예견됐던 사안이다. 중·일 협공 또는 외교적 사면초가라고 자학적으로 규정할 상황은 아니다. 다만,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세워진 시민단체의 소녀상과 더불어민주당 사드 방중단이 인화성을 제공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기원’을 집필한 이정식 선생은 독립운동가 화암 정현섭과 1967년에 가졌던 면담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중국 충칭(重慶)에서 회의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너희 나라 사람들은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기가 막힌 보배들이다. 금강석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분열되어 있느냐’고 해요. (임시정부)외무부장으로 있던 조소앙이 ‘금강석이니까, 합치지를 못하지요’라고 해서 모두 웃었지요.” 화암이 한·중 합동유격대를 조직했던 1942년 무렵의 일화다.

한국 정부는 일본과 중국의 의도를 간파할 필요가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8일 “국가 신용의 문제로, 한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위안부 합의를 실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언급은 한국에서 권력 교체가 이뤄지면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감에 기인한다. 또, 중국 랴오닝함 항모전단의 동태평양 진출로 불편해진 국내 우익 진영을 달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까지 수십 년이 걸렸듯, 아베 총리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드 방중단을 지난 4일 접견한 왕이(王毅) 외교부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 정부의 면담 요청을 거절하면서 차기 정부의 사드 주한미군 배치 재협상을 의식해 민주당 의원들을 환대하는 간계를 썼다. 과연 중국이 대국인지 의심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정작 중대한 문제는 우리 내부의 정치인들에게 있다. 민주당은 위안부 합의 폐기와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합의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원천무효라는 것이다. 위안부 생존자 46명 중 29명이 위로금을 지급 받은 사실 역시 외면한다. 시민단체는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고 촉구할 수 있지만 정부 차원의 접근방법은 달라야 한다. 언제까지 위안부 문제가 미래로 가는 발걸음을 붙잡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국제사회가 제재와 압박으로 줄기를 잡은 북한 핵 문제를 핵 동결 인정 및 대화·협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도 이상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로 꼽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진영에서는 위안부 문제 재협상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금 일본과 중국의 시선은 사드와 위안부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문제를 풀어 나가는 한국 정치의 방식을 주목하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먼저인지 개인의 권력 추구가 우선인지 지켜보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에게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경구를 돌아보기를 권한다. ‘이상주의는 정치적 신사들이 자신들의 권력 의지를 포장하는 고귀한 겉옷에 불과하다.’ 국제 정치는 이상이 아닌 현실로 움직이고 분열의 정치는 망국을 이끈다.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