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적 판단 업무 모두 보류상태
곳곳에서 “令이 안선다” 한숨만

행정부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후폭풍 무력감에 빠져 ‘복지부동(伏地不動)’ 태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장관 수명’이 길어야 6개월 남았을 것으로 보고 정책적 판단을 요구하는 업무는 아예 책상 서랍에 보류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정치권 눈총을 피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연일 장관들을 독려하고 있지만 안보와 치안, 보건 위생 등 필수불가결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장관 말발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2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내 확정하기로 했던 건강보험부과체계 개편안이 사실상 올해 내 발표가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건강보험부과체계 개편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은 물론 청와대와도 협의가 필요하지만 정국 혼란으로 부처 간 협조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경우 정년 60세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노동개혁 입법을 최우선 목표로 추진해 왔지만 최순실 사건으로 추진이 중단된 상태다. 이처럼 각 부처가 적극 추진해 왔던 국가 중요 정책들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 내년에 대선 국면을 맞으면 앞으로도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론 수렴이 필요하거나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한 정책들은 추진이 중단되거나 내년 이후로 연기되고 있다. 그동안 각 부처 장관이 대내외에 공언했던 정책들조차도 마찬가지다.

경제 분야에서는 “총괄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예탁결제원 등 4개 기관에 대한 성과연봉제 도입 시기를 2018년으로 사실상 1년 늦췄다. 금융위는 기타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해 독자적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 이는 지난 2월 “금융 공공기관에 기재부 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강한 의욕을 드러내던 것과는 딴판이다. 또 기재부에서 “성과연봉제를 예정대로 시행해 내년부터 차등 임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입장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공공 개혁을 담당하는 송언석 기재부 2차관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업무 실적을 평가해 내년 중·하반기에 차등 임금이 지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기재부 지시를 금융위가 거부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용권·박정민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