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니엘 블레이크’의 진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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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월요일 아침 9시라는 별난 시간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를 봤다. 황금종려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영국의 사회보장 체제의 문제점을 고발한 영화라서 굳이 찾아가 본 것이다. 그때 그 영화를 본 사람은 우리 부부와 또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 그 시간에라도 상영해준 것을 고맙다고 해야겠다. 흥행성이 떨어지는 영화여서 언제 종영할지 모르지만 아직은 상영 중이니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번 보면 좋겠다.

영국의 뉴캐슬에서 평생 목수로 살아온 선량한 시민인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당분간 일을 하지 말라는 진단을 받고 질병수당, 실업수당 등 복지 혜택에 의존해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질병수당을 신청하는데, 자동응답 시스템이 자신의 병과 관계없는 질문들을 던지는 데 분통이 터져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바람에 수당을 받지 못한다.

실업수당 신청에서는 모든 복지 혜택 신청 서류는 인터넷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벽에 부닥친다. 그는 이리저리 물어서 어렵사리 이 난관을 돌파한다. 그런데 실업수당이라는 것이, 이력서 작성법 등 교육도 받아야 하고, 지속적으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구직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는 이력서를 많이 만들어서 목수가 필요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구직활동이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증거도 없다면서 이력서를 받았다는 영수증을 받아 오거나 이력서를 받은 사람과 사진이라도 찍어 오라고 한다.

실업자가 많지 않을 때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실업자가 많아져 하루에도 몇 명씩 찾아오게 되면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그를 써 주겠다는 곳이 나타났는데, 그는 의사의 진단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사장은 당연히 “당신의 이력서를 보고 진지하게 채용을 검토한 내 시간이 아깝다”며 화를 낸다. 결국, 그의 실업수당은 계속 삭감된다.

그는 복지사무소 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자신의 이의 제기를 심사해줄 날짜를 잡아달라는 요구를 크게 써서 항의하고 경찰에 잡혀가기까지 한다. 경찰은 훈계방면으로 끝내주었지만, 이후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연명할 수밖에 없게 되고, 지병이 도져서 죽고 만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란 말을 남긴 채….

그러던 중 집세가 싼 집을 찾아 두 아이를 데리고 이곳으로 이사 온 케이티라는 젊은 여성이 길을 잘 몰라 약속 시간에 조금 늦었다고 복지사무소에서 생계보조금 신청을 거절당하는 것을 보고 분개한다. 그리고 담당자들에게 항의한다. 그는 자신도 어려운 형편에 이 가족을 계속해서 돕는다. 케이티도 복지 혜택에 기대어 살면서 힘들고 자존심 상하는 일을 계속 겪는다.

이 영화를 보고 영국의 복지 시스템이나 담당 공무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삶을 공공(公共)의 손에 의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지고,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비용을 세금으로 내고 사는 것이 정상이고 원칙이며, 그것이야말로 ‘국가나 권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지 수혜자가 적을 때는 담당자가 개개인의 사정을 잘 파악할 수 있으니, 신속한 판단과 세심한 배려를 가능케 할 재량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못 구하고 복지 혜택에 의존해 살게 되면 국가 재정(財政)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자격 요건과 확인 절차는 더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자격을 심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조직도 커지게 되면 점차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복지 수혜 자격 심사도 하나의 권력이 되고, 생살여탈권을 가진 그 권력 앞에서 사람들은 쉽게 비굴해진다.

일 년 안에 대선이 있을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 월 30만 원을 주겠다는 등 선심 경쟁은 벌써 시작됐다. 복지 혜택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주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주겠다는 것은 결국 복지 전달 기구의 비대화, 비인간화, 권력화를 초래하고, 이는 우리의 삶에 국가의 간섭과 개입을 자초하는 길임을 명심하자. 장사가 잘 되고 취직이 잘 되는 나라를 만들어줄, 즉 국민의 자유와 자존심을 지켜 줄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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