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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체육부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2일 열린 2016 체육인의 밤 행사에서 “정부가 체육인들에게 군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체육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체육계를 통제하지 않고, 동반자로 여기겠다는 뜻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돼 구속된 김종 전 문체부 제2차관이 재임 기간 내내 체육계를 억눌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체부는 자율성 보장을 위해 예산 집행권을 체육회에 돌려주고, 문체부가 운영하는 스포츠비리 신고센터 업무 또한 체육회로 이관할 계획이다.

예전엔 체육회 전체 가맹 경기단체의 훈련·운영비 등을 체육회가 문체부로부터 연 단위로 수령한 뒤, 각 가맹 경기단체의 요청에 따라 지급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 문체부는 체육회를 배제하고 경기단체에 직접 훈련·운영비 등을 지급했다. 체육회를 거치느라 급히 써야 할 비용 수령이 늦어져 전지훈련 등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으니, 예산 집행권의 ‘원상회복’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체육비리 관련 업무마저 체육회로 이전하는 건 문제가 있다. 문체부가 2014년 2월부터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그해 5월부터 경찰청과 함께 스포츠 4대악 합동수사를 펼친 결과 수십억 원의 횡령, 대학 입학을 위한 승부 조작, 그리고 폭력 등의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문체부의 체육비리 ‘집중단속’이 있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체육계는 관리·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무풍지대였기에 부정과 비리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경기단체 임직원과 지도자들마저 매도당했다.

문체부가 주력했던 체육비리 척결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는 건 이해되는 일이다. 최순실 씨가 딸 정유라 씨를 위해 대한승마협회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반대파를 내모는 수단으로 체육비리를 들고 나왔고 그래서 최 씨의 심복, 수행비서에 비유되는 김 전 차관이 체육비리 근절에 앞장선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그러나 그 의도의 순수성이 의심되더라도 충격적인 결과를 부정할 순 없다.

체육회는 문체부와는 별도로 자체적인 비리 감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기단체의 부조리와 관련, 체육회가 강경한 징계처분을 내린 적은 거의 없다. 대개 경기단체 자체가 내린 징계 수위에서 무마하고 덮었다. 자체 정화의 한계에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체육회가 아닌 독립적인 기관에서 체육비리를 다루는 게 합리적이다. 문체부와 체육회가 합동으로 체육비리 전담 기구를 운영하거나, 전원 외부 인사로 구성된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는 게 바람직스럽다. 체육비리와 체육회의 자율성 보장은 별개다.

스포츠 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에서 최근 유소년 축구선수, 미성년 체조선수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외부의 관리·감시를 받지 않았기에 벌어진 불상사다. 영국과 미국 언론은 체육계의 성범죄를 관련 경기단체가 인지하고도 지난 20여 년간 쉬쉬했기에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한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jh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