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의 ‘찜찜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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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장면 하나. 2012년 8월, 오찬 중 박재완 장관의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님, 무디스가 우리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Aa3 등급이라 합니다.” 선진국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락하는 상황이었다. 가뭄에 단비 같은 낭보였다. “아, 그래요? 정말 수고했어요. 실무자들도 많이 격려해주세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나오는 내용이다.

#.장면 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우리나라 신용등급이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G20 국가 중 5위를 기록해 역대 최고 수준이 되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국회 개원식 연설에서도 “지난해 경제 규모가 세계 13위에서 11위로 뛰어올랐다. 국가신용등급도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성공한 경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길 바란다. ‘고복격양’(鼓腹擊壤·백성이 배 두드리고 발 구르며 태평성대를 누린다)이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정치라는 진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임기 중 경제 성과를 보여주는 각종 지표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중 국가신용등급은 민심 잡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비밀 병기’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은 역대 최고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무디스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두 곳이 Aa2(또는 AA)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더 상향되면 미국, 독일 등과 동급이 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신용등급은 ‘부채 갚을 능력’을 나타낼 뿐 경제 체질이나 미래를 평가하는 잣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고(高)신용등급으로 ‘자만의 늪’에 빠져 있던 국가들이 경제 대재앙을 겪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불행히도 최상의 등급에 취한 나머지 눈앞에서 울리는 위기 경보를 흘려 들었다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자초한 한국이 대표적이다.

보수적인 무디스가 최근 박 대통령 탄핵 소추가 한국 경제와 국가 신인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새로운 주요 정책이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신용도에 부정적’이라는 게 요지다. 께름칙하다. 국내외적으로 전대미문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에게 임기 중 사상 최고의 신용등급과 사상 최악의 신용등급을 함께 기록하는 불명예가 더 보태질지 모를 일이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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