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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호주의 상징 동물 캥거루는 새끼를 대개 한 마리만 낳는다. 임신한 지 31∼36일쯤 태어난 새끼의 크기는 지름 1.5∼2㎝, 몸무게 약 1g. 이 조생아(早生兒)는 눈도 뜨지 못한 벌거숭이 상태다. 앞발만으로 어미의 출산길 끝에서 육아낭까지 기어 올라가야 산다. 캥거루의 삶은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겨우 3∼5분 남짓하지만, 12∼18년을 살아갈 새끼 캥거루에겐 생사가 갈리는 시간이다. 어미가 핥아서 닦아준 길을 따라 모정 넘치는 인큐베이터에 무사히 입주하면 새끼는 대개 180∼320일가량 그 속에서 자란다. 아기 주머니에서 나온 뒤에도 한동안 어미 주변을 떠나지 않고 맴돈다. 그걸 패러디한 말이 캥거루족(族)이다.

캥거루족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 도처에 있다. 그 이름이 말해준다. 일본말은 ‘파라사이토 신구루’다. 기생충 또는 식객이란 뜻의 영어 패러사이트와 싱글의 합성어로 기생독신(寄生獨身)을 일컫는다. 미국에서는 어중간한 세대 ‘트윅스터’, 영국에서는 어리고 생각 없고 비용만 드는 아이 ‘야키스’라고 한다. 캐나다의 부메랑 키즈, 이탈리아의 맘모네, 프랑스의 탕기, 독일의 네스트호커도 같은 말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청년들이 구직난에 지쳐 자립심이 약해지게 마련임을 잘 보여주는 조어다.

그런데 요즘에는 새로운 캥거루족이 생겨났다. 취업도 하고 결혼도 했지만, 자립 분가하지 않고 생활비를 보태면서 부모와 함께 사는 자녀들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가구실태를 보면 신(新)캥거루족이 전체 가구의 4.4%나 된다. 젊은 부부들의 이러한 가치관 변화 이면에는 청년 실업과 만혼 세태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학 학자금과 스펙 쌓기 비용, 결혼 자금은 물론 주택 마련 비용과 육아 비용 등 생활비의 상당액이 할배-할매 부담으로 돌아간다. 젊어서는 내 아들딸, 늙어서는 자식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게 요즘 노부부들이다.

신캥거루족은 예전의 대가족과 닮았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농경·유교 사회의 대가족 문화는 가업 승계나 부모 봉양 같은 사회적 이유가 주요 배경이었다. 상리공생(相利共生)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오늘의 뉴 캥거루족은 경제와 육아 문제 등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으려는 ‘편리(片利)공생’을 한다. 젊은 부부의 부모댁 함께살이를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