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안은진 기자 eun0322@

‘TK적자’라는 정치자산과
‘개혁보수’ 명분 사이 고민

“탈당은 정치생명 거는 일
의원 설득에 시간 걸릴 것”
비박계 집단 탈당 초읽기
제3지대 머물다 신당창당

사회경제기본법 등 주도
성장 더불어 정의도 중시

대구·경북(TK) 적자란 정치적 자산과 개혁적 보수란 정치명분 사이에서 고심하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조만간 양자택일의 결단을 한다. 새누리당을 탈당할 마지막 의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TK와 보수정당에 애착을 보여온 그가 스스로 새누리당을 쪼개고 나와 ‘새로운 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신당을 창당하려 한다. 4·13 총선과 미국 대선의 도널드 트럼프·버니 샌더스 돌풍에서 확인되는 정치 패러다임 변화를 이어받아 한국판 보수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20일 통화에서 “우리 당이 진짜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는 개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아픔이 있어도 감수하겠다고 한다면 제가 탈당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했다.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결정이지만 탈당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음을 밝힌 셈이다.

유 의원이 주장해온 ‘새로운 보수’는 기존 보수가 상대적으로 경시해왔던 가치를 앞세운다. 민주, 공화, 자유, 성장이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되 정의, 공정, 평등, 복지를 실현해야 지속가능한 보수, 사랑받는 보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기존 보수 우파의 본거지인 TK 출신이자,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여의도연구소장을 역임한 주류 경제학자의 이러한 주장을 눈여겨 봐왔다. 유 의원이 그간 추진해온 사회적경제기본법, 공무원 연금개혁,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인상 과정에서 보여온 정치 노선은 진보좌파에서 전향한 사회운동가들이 주도했던 뉴라이트보다 충격파가 더욱 컸다.

유 의원의 이러한 행보를 종합해보면 그의 신당은 일단 제3 지대에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제3의 길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노동당 당수이자 총리의 멘토였던 앤서니 기든스가 처음 꺼내 든 말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와 하향식 사회주의 경제를 배척하고, 성장·기업·부의 창출을 중시하되 정의구현을 위한 국가 역할도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야권, 일부 여권 잠룡들이 주장해왔지만 보수 우파에 기반을 둔 정치적 결사체로서는 처음 들어서는 길이다.

유 의원을 비롯한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은 탈당 후 독자노선을 걷기보다는 김무성 전 대표와 힘을 합해 제3 지대의 공간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김 전 대표와 유 의원은 동반 탈당 후 새로운 보수정당 창당이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자주 정치적 이견을 보여왔지만, 김 전 대표가 주장해온 경제민주화와 유 의원의 새로운 보수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재벌개혁을 주장해 온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춰본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유력한 정치적 파트너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실제 탈당을 결행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유 의원은 “탈당은 정치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라며 “같이 결행할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박계에서는 “시간을 끌다가는 탈당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며 일부 의원들의 선도 탈당을 주장하고 있다. 일단 10~20명의 의원이 먼저 탈당한 후 지역구 당원 설득작업을 해야 하는 나머지 의원들이 내년 초 추가 탈당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당에 잔류한 중진 의원들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핵심 인사와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 및 지역 당원들까지 두루 설득해 신당에 동참토록 할 방침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새누리당 분당 시점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보수 정당의 마지막 날도 마침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