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기업들 ‘캐즘’의 공포
소니, 판매 예상치 대폭 축소
소비층 국한… 구조적 한계
기기 개선·콘텐츠 확보 필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차세대 먹거리로 내세웠던 가상현실(VR) 시장이 ‘캐즘(Chasm)’의 공포에 떨고 있다. 지층 사이에 생긴 큰 틈이나 협곡을 지칭하는 캐즘은 ICT 업계에서 처음에는 사업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과 같은 정체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각종 VR 감상 기기들이 출시되며 VR 산업의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연초의 전망과는 달리 최근 VR 기기를 선보인 업체들은 잇단 부정적 전망에 직면해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3차원(D) TV가 불편한 안경과 콘텐츠 부족으로 실패한 것처럼 VR도 불편한 VR 감상기기 개선과 콘텐츠 확보가 이뤄지지 않으면 3D TV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미국 시장조사업체 슈퍼데이터는 올해 초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S) VR에 대해 260만 대 판매를 예상했으나 최근 75만 대로 판매 예상치를 대폭 낮췄다. 바이브를 선보인 HTC 역시 이익 창출에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BGR은 “2016년 소니의 PS VR, 구글의 데이드림뷰, HTC의 바이브, 오큘러스 리프트, 삼성전자 기어VR 등의 판매량이 VR 콘텐츠 부족과 높은 가격으로 시장 예상치를 밑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 VR 시장은 스마트폰과 같은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의 성격을 지녀 기기 판매와 콘텐츠 확충이 선순환 구조를 이뤄야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콘텐츠는 물론 만족할만한 가격과 성능의 기기도 출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초기 확산에서 전 인구가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대체하며 성장해온 스마트폰과는 달리 VR의 경우 특정 소비층에 국한된 형태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 구조적으로 ‘넥스트 스마트폰’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해 구글, HTC, 오큘러스, 소니가 VR 사업 협력을 위해 글로벌 VR 협회(GVRA)를 구성한 것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결과물로 해석된다. 특히 업계에서는 해당 단체를 통해 업체별로 제각각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규격의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오큘러스 스토어에서 구매한 콘텐츠는 바이브나 PS VR에서 작동하지 않고 구글의 VR 감상기기 데이드림뷰는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호환되지 않는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