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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분식점 천사’이명숙 씨

“부끄럽긴 한데, 제가 이렇게 작게나마 좋은 일을 했더니, 우리 집에 ‘천사’가 왔어요. 우리 남편이 신장이 많이 안 좋아서 걷지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건강해져서 집에만 있던 사람이 나랑 같이 장사도 해요. 저 꽈배기들은 모두 우리 남편이 만들고 튀긴 거라니까. 우리 남편이 가게 이름대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잖아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1985년, 강원도 산골 농부와 결혼한 아내 이명숙(54·사진) 씨는 시집을 가자마자 시부모와 시동생, 두 딸 등 모두 일곱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남편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위 ‘소작농’이었던 탓에 하루하루 집안 살림을 꾸려 가기가 쉽지 않았다. 병석에 누워 있는 시아버지, 결혼 못한 시동생들, 어린 두 딸아이의 생계가 모두 이 씨 부부 손에 달려 있었다.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이 씨 부부는 결국 1989년 강원 횡성으로 나가기로 했다. 도시로 나가면 ‘일감’이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에 무작정 길을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 버리고 말았다. 이 씨는 7일 “기대와는 달리 일거리가 없어 남편은 막노동, 저는 파출부 등으로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며 “아이들이 크면서 그나마 파출부도 더 이상 못하게 돼 살림이 더욱 힘들어졌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설상가상. 30대 초반에 당뇨병에 걸렸던 남편이 50대 초반에 접어들면서 합병증으로 신장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신장의 85%가 망가졌다는 진단과 함께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어렵게 어렵게 이 씨는 2002년 강원 원주시 명륜동 남부시장에 조그만 떡볶이 가게를 내고 ‘오뚜기 분식’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힘겹게 분식집을 꾸려 오던 중 지난 2010년 어느 날, 이 씨는 우연히 아프리카 굶주린 어린아이들을 소개하는 TV 방송을 보고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들게 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 씨는 “장사하느라 TV 볼 시간이 없었는데, 우연히 시장 안에 설치돼 있던 TV를 통해 그 방송을 보게 됐다”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들을 보고는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 이후 이 씨는 모두 세 곳의 단체에 기부하면서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기부를 시작한 후부터 이 씨에게 좋은 일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반가운 것은 남편의 건강 회복. 이 씨는 “병원에 신장 기증을 신청하고 기다렸지만 이미 남편 앞에 9명이나 대기자들이 있어 언제 신장을 기증받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며 “그런데,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앞의 대기자들이 모두 감염을 우려해 신장 이식을 거부하면서 거짓말처럼 남편이 신장 이식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신장 이식을 받은 후 이 씨의 남편은 가게에 나와 같이 장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됐다. 입소문을 타고 단골도 늘어나면서 가게 매출도 안정돼 갔다.

이 씨는 “비록 넉넉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며 “가진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면 끝이 없으니, 조금씩 베풀면서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배고픈 아이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오라고 손짓했다. “다른 건 몰라도 떡볶이와 꽈배기는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며 이 씨는 활짝 웃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