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현종 논설위원

사상 최대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서울과 광주, 대구에서는 의미 있는 장면이 벌어졌다. 광주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구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그리고 서울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참여했다. 이들 3명에 대한 시위 참가자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문·안 두 전 대표는 일부 시민의 반발로 마이크도 잡지 못했다. 탄핵 정국에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인 탓도 있겠지만 국회 경험이 짧은 두 사람도 벌써 기성 정치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반면 서울 집회에 참석한 이재명 시장은 연설할 계획도 없었는데 시민들의 요구에 못 이겨 30분 동안 대중연설을 할 기회를 가졌다. 전날 문 전 대표가 한 방송에서 이 시장이 시원하게 말을 잘한다는 의미로 ‘사이다’ 같다고 하면서도 자신을 ‘고구마’에 비유하며 “탄산음료는 금방 목이 마르다. 반면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이를 맞받아 “사이다하고 고구마는 같이 먹어야 맛있다”고 한 방 날렸다. 짧게 오간 얘기이지만 문 전 대표에게는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이 시장에 대한 불안감·초조감이 묻어난 반면, 이 시장은 훨씬 여유 있는 모습으로 비쳤다.

문 전 대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추미애 대표가 이 시장의 지지도 상승에 대해 “우리가 바라는 현상”이라고 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오직 민주주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는 이 시장의 저서 제목처럼 지난해 초만 해도 2%에 불과하던 이 시장의 지지도는 최근 KBS 조사 결과 15.7%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7.3%), 문 전 대표(17.1%)에 이어 3위를 기록하며 몸통을 흔들고 있다. 서울에서는 이 시장(20%)이 문 전 대표(14.9%)보다 앞서고 있다. 최근에는 호남에서 안 전 대표의 지지를 이 시장이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호남이 이 시장을 선택한다면 ‘이래문(이래도 문, 저래도 문)’ 현상은 ‘이재명 현상’으로 대체될 가능성도 있다.

촛불 집회가 열릴 때마다 급상승한 이 시장의 인기 비결은 돌직구 스타일의 선동적 언변 효과가 크다. “여러분의 손으로 무덤을 파자. 우리의 손으로 그를 잡아 역사 속으로, 박정희의 유해 옆으로 보내주자” “수갑 차고 구치소로 직행해야 할 사람” 등 기성 정치인들은 하기 어려운 발언들을 쏟아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독설과 비슷하다.

그는 경북 안동의 화전(火田)을 일구는 부모에게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당시 철거민들이 대거 몰린 성남으로 이사와 공장을 다니며 안 해 본 일이 없다.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중앙대 법대에 들어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공장 다니던 시절 팔 등을 다쳐 6급 장애인이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되기 전 인권변호사를 한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이런 성장 배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정치권에서 보면 변방(邊方)의 자치단체장인 그는 신문·방송 등 기존 언론매체 대신 SNS를 통해 지지자들과 소통한다. 무상 산후조리원, 청년 수당 지급 등 비교적 재정이 풍부한 성남시의 특성을 이용해 포퓰리즘 정책을 펼친 것도 한몫했다. 이 시장은 대선 경선이 붙으면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개헌 공약도 내걸 계획이다. 문 전 대표와는 달리 철저히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전략이고, 보수층에 대해서도 “진짜 보수라면 나와 다르지 않다”고 손을 내밀기도 한다.

이 시장의 이런 상승세가 촛불 이후에도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친형이 ‘박사모’ 성남지부장을 할 정도로 가족 간의 불화가 심하고, 인터넷에 올라온 형수와의 ‘욕설 전화’ 등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면 거품이 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장의 포퓰리즘 정책이 대한민국 전체로 확대된다면 더 걱정스럽다. 거리에서는 선명한 주장이 귀에 쏙 들어오지만 실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위치에서는 천지 차이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박 정부의 충격적인 실패에 대한 반작용이 내년 대선에 몰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앞선다. 대선이 내년 6월쯤 치러진다면 후보와 정책에 대한 검증은 생략되고 대선을 맞이할 수도 있다. 박 정부는 이제 실패로 막을 내리지만 몇 년 뒤 또 이런 촛불을 들지 않으려면 냉정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