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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체육부장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불똥이 스포츠 스타들에게 튀었다. ‘국민 오누이’로 불리는 수영의 박태환과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그리고 리듬체조의 손연재 등 한국체육의 ‘얼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협박당하거나 찍혔으며, 반대로 특혜를 받았다는 소문에 휩싸이면서 상처를 입었다. 스타를 포함한 체육인, 체육계는 약자다. 문화체육관광부, 즉 정부의 요구를 뿌리치기 힘들다. 4000억 원이 넘는 대한체육회의 한 해 예산 대부분을 정부가 지원하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또 체육회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체육회의 정관엔 ‘체육회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규정 중 예산을 수반하는 직제·인사·보수 등에 관한 규정, 시·도체육회 규정, 회원종목단체 규정, 가입·탈퇴 규정 및 생활체육지도자 배치 및 근무 규정을 제·개정하거나 회원종목단체를 가입시킬 경우에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 주무부처와 협의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인사 규정 등에는 ‘주무부처와 협의해야 한다’가 아니라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받는다는 건 문체부에 종속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체육회, 즉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인사권 등을 정부가 장악하는 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헌장에 어긋난다. 올림픽헌장은 정부가 국가올림픽위원회(NOC)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 4월 엘리트, 생활체육이 체육회로 통합되면서 정관을 새로 마련했고 이 과정에서 문체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정관엔 ‘문체부 장관의 승인’이라고 돼 있었지만, IOC가 수정을 요구해 ‘주무부처와 협의’로 바꿨다. 하위 규정이 정관과 다른 건 이유가 있다. 정관은 IOC에 보내 ‘OK’ 사인을 받아야 했지만, 하위 규정은 IOC가 보여달라고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육회는 지난달 28일 제2차 미래기획위원회를 개최하고 정관 개정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정관과 하위 규정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종 전 문체부 제2차관과 대립했던 이기흥 전 대한수영연맹 회장이 체육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체육회는 자율성 확보를 꾀하고 있다. 정관을 개정하겠다는 건 하위 규정의 ‘문체부 승인’을 정관의 ‘주무부처와 협의’로 맞추고, 나아가 과도한 규제는 없애 문체부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체육회의 자율성 확보는 그러나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인다. 한 해 수천억 원의 국고가 투입되기에 문체부는 관리·감독 권한을 주장하고 있다.

문체부와 체육회는 체육행정의 두 축이다. 하지만 체육 단체 통합 과정에서 문체부와 체육회는 날을 세웠고, 이로 인해 혼란이 빚어졌다. 김종 전 차관, 김정행 전 체육회장, 강영중 전 국민생활체육회장이 스위스 로잔의 IOC 본부를 ‘동반 방문’하는 촌극까지 연출했다.

체육회 정관 개정을 놓고 문체부와 체육회 간 2라운드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엔 싸우지 말고,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원-윈 해법’을 찾는 게 어떨까. 올림픽헌장이 요구하는 것처럼 체육회의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정관을 고치고, 예산 운영은 문체부가 철저하게 감시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jh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