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남자란 무엇인가 / 안경환 지음 / 홍익출판사

한때 ‘남자 분석서’ 열풍이 불었다. 심리학자 김정운의 ‘남자의 물건’(2012년), 소설가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2013년),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마쓰마루 다이고(松丸大吾)의 ‘뇌가 섹시한 남자, 마음이 섹시한 여자’(2015년) 등….

남녀의 차이점을 말하면서 그게 실은 역사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데서 근거한다고 밝혀 인기를 끌었다. 비단 겉모습뿐만 아니라 남녀 심리와 행동의 차이는 인류의 출현 이후 수백만 년 동안 꾸준히 축적된 DNA의 차별성에서 비롯한다는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남녀 차를 성(性) 구별 정도로 인식하던 사람들은 신선한 해석에 주목했다. 남자의 이상행동, 내지는 여자의 모호한 언어사용의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숨어 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책은 기본적으로 이 같은 남녀 차에 관한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다. 남자라는, 이제는 진화를 멈춘 것만 같은 ‘수컷’들의 본성을 다룬다.

이미지 크게보기

시작(1부)은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뇌 구조부터다. 남자는 논리로 행동하나 여자는 감각으로 움직인다. 남자는 말을 해야 알아듣지만 여자는 느낌으로 알아주길 바란다. 뇌의 작용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이다. 여자의 뇌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옆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다. 하지만 남자는 안 된다.

휴일 소파에 누워 있는 남편인 당신에게 아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나. “앉아서 TV만 보지 말고 빨래 좀 개요. 그건 TV 보면서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이것은 ‘싱글태스킹’인 남편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대화의 내용이나 방식에서도 뇌 구조에 의한 차이는 명백히 드러난다. 소통 능력이 뒤지는 남자는 침묵으로 위기를 넘기려는 성향이 강하다. 말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낫다. 그러나 여자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소통을 잘하고 좋아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남자는 알고 있는 지식을 말하고 여자는 즐거운 일을 말한다”고 남녀 차를 설명했다.

그러나 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남녀 차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주제를 결혼과 사회, 나이 듦으로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분석의 대상을 남자에서 인간으로 확대한다. 이제는 남자만의 스토리라기보다는 인간사이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 점검해 봐야 할 것들이다.

2부 ‘남자와 결혼’에선 결혼이라는 사회제도에 대한 통념을 되짚어본다.

저자가 도달한 결론부터 말하면 결혼생활의 본질은 ‘관성’과 ‘체념’이다. 관성이란 부부 사이에 축적된 편한 상태다. 둘 사이가 편해지기 위해선 서로 양보해야 한다. 체념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부부가 언제나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때론 정상이 아님을 인정할 때 행복하다. 사랑의 본질은 체념이다.

섹스에 대한 관념도 달라졌다. 이제 육체적 순결은 과거처럼 중요하지 않다. 혼전 섹스가 증가했고, 여성의 가치가 성도덕과 결부됐던 시절은 끝났다. 성 혁명은 여성의 가치를 정조와 동일시하는 태도를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3부 ‘남자와 사회’는 영역이 더 넓어진다. 국제적 역학관계, 종교와 인터넷 등 현재의 다양한 이슈를 진단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불편한 이웃 나라 일본, 휴전선을 맞대고 대치하고 있는 북한, 패권주의를 노리는 중국에 휩싸여 끝없는 긴장 속에 살아간다.

축복인지 재앙인지 알 수 없는 사이버 시대에 속도와 변신도 강요받는다. 인터넷은 지식 습득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고, 디지털 친밀도는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좋아하는 일, 삶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일부러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도 필요하다. 기계문명에 지친 심신의 치료법은 의외로 그냥 걷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언제나 조급하게 살아왔던 한국인에게 더없이 절실한 충고다.

4부 ‘남자의 눈물’에선 인간의 고된 삶에 대한 철학적 인식이 펼쳐진다. 오늘날 ‘헬조선’을 사는 우리는 모두가 피곤하고 힘들다. 특히 책임과 의무만 강조되고 고유의 역할은 줄어든 남자는 괴롭다. 아무리 ‘노오력’을 해도 헬조선을 헤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이 때문에 저자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 ‘연탄 한 장’을 인용하며 뜨겁게 살 것을 주문한다.

“20세기까지는 대체로 남자의 시대였다. 그러나 새 세기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 ‘연탄재’처럼 누구나 뜨거운 존재가 돼야 한다.”

남자에서 시작한 책은 고정관념이 허물어지고 가치관이 급변하는 21세기 사회 속 우리로 옮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서울대 법대에서 ‘법과 문학’을 강의했던 저자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동서고금의 수많은 명저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이 읽기 편하다. 남의 글을 읽지 않고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요즘 중년 남자들에게 특히 추천한단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